백악관과 연방의회를 비롯한 정부 부서들이 밀집한 워싱턴DC는 명실공이 미국의 정치 중심지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특별 자치시는 미국의 정치 수도이자 ‘박물관 수도’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미소니언은 산하에 거느린 다양한 성격의 19개 박물관에 총 10억5,400여만 점의 전시품목을 소장하고 연간 3,000여만 명의 방문객을 맞고 있다.
DC에는 80여개 박물관이 산재한다. 이들을 모두 찾아보지 못한 현지 한인주민들도 많을 터이다. 건물 박물관, 여성예술가 박물관, 국제 스파이 박물관, 섹스피어 박물관에 우편 박물관도 있다. 방문객들이 뉴스 기사를 작성해 데드라인(마감시간) 안에 올리도록 기자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뮤지움 아닌 ‘뉴지움(Newseum)’도 있단다. 나도 한번 찾아가볼 참이다.
지난주 워싱턴DC 한복판에 특이한 소재의 대규모 박물관이 또 하나 추가됐다. ‘성경 박물관(Museum of the Bible)’이다. 국립광장에서 2불록, 연방의회에서 3불록 떨어진 곳에 지난 2년간 5억달러를 들여 세워진 성경 박물관은 8층 건물로 총 건평이 43만 평방피트다. 출입구엔 사상 최초의 금속활자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을 새긴 거대한 동판이 벽을 덮고 있다.
이 박물관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 시대(구약)부터 예수 시대(신약)까지 이르는 4만여 점의 사적자료와 예술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고대 파피루스 성경, 토라 두루마리, 킹 제임스 성경 초판을 비롯한 진귀한 사료는 물론 각국 언어로 인쇄된 현대 성경도 전시돼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성경, 베이브 루트의 기도 전서, 일본의 만화성경도 끼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창세기), 모세가 시내산에서 목격한 여호와의 ‘불붙은 떨기나무’(출애굽기), 미국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전국 거민에기 자유를 공포하라”는 문구(레위기)가 새겨진 ‘리버티 벨’의 모형도 전시됐다. 유리로 증축된 옥상에는 성경에 나오는 고대 유대음식을 파는 ‘만나’ 식당과 카푸치노, 라테 등 현대 음료를 파는 ‘젖과 꿀’ 카페가 있다.
개관 첫날부터 방문객들의 눈길을 유난히 많이 끈 전시물이 있다.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사해사본’이다. 지난 1947년 사해 인근 쿰란지역의 10여개 동굴에서 발견된 이 두루마리 기록물은 2000여년전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성경이다. 문제는 이 전시물의 진본 여부다. 박물관 측은 “이들이 진짜인가?…계속 조사 중”이라는 자문자답 설명문을 달아 놨다.
이 전시물이 의심 받는 건 박물관 설립자 스티브 그린의 전력에 크게 기인한다. 대규모 공예품 재료 체인 매장인 ‘하비 라비’ 소유주이자 억만장자인 그린은 박물관 건립 이전에 이라크에서 밀수된 5,500여 점의 고대 토기문자판을 매입한 혐의로 연방 법무부의 조사를 받은 끝에 300만달러 벌금에 합의했었다. 이들 토기 사료들은 그후 이라크에 반환됐다.
그린이 사해사본 조각 13개를 수백만달러에 사들였다는 루머도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전국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신념의 기업인이다. 종업원들의 피임비용을 고용주가 보험으로 커버해주라는 정부지침에 맞선 그는 “크리스천 기업주는 생명존중 신념에 따라 제외돼야한다”고 소송을 벌여 2014년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기념비적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켄터키주의 기존 ‘창조 박물관’과 ‘노아의 방주 박물관’이 기독교 원리주의에 기반을 둔 반면 성경 박물관은 실용주의 하이텍을 적극 응용하고 있다. 첫날 관람객들 중엔 “크게 감동 받았다”거나 “왜 이 좋은 박물관이 이제야 설립됐느냐”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똑같은 성경에 뿌리를 둔 무슬림과 유대교에 관한 전시물이 빈약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경 박물관은 무료입장이다. 하지만 꺼림칙한 게 있다. 정치와 무관하다면서도 테이블 당 5만달러짜리 개관 기념파티를 DC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열었다. 정치인들의 성추행 전력이 연일 터지는 세태에 의사당 옆에 문을 연 성경 박물관의 타이밍이 절묘하지만, 박물관에나 가야 성경책을 구경할 날이 올 것임을 예시하는 것 같아 찜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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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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