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디서부터 시작일까? 봄은 왜 추울까? 2월 4일은 입춘(立春)이다. 대문마다 커다란 붓글씨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이란 글귀가 붙여 있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분홍빛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을 넘어 눈이 부시다. 그 때부터였을까?
작사가 이름은 모르지만 동요 하나가 생각났다. 가만히 귀 대어 들어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아아요.
그런데 봄은 춥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말해주듯이 너무나 춥다.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다가 밖에 나가보았다. 놀랍다. 누가 그러던가? “귀신도 모르게” 버들강아지가 피었다. 쌓인 눈 더미와 눈 더미 틈으로 수선화 새싹이 삐지고 나온다. 귀신도 모르게...
눈(雪)의 눈물이라는 스노드롭(snowdrop)이 앙증맞게, 하얗게, 땅에 떨어질 듯 피어있고, 크로커스(crocus)가 색색이 어여쁜 얼굴을 내밀었다. 저렇게 어린 것들이 어떻게 이 추위에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경이롭다.
먼 곳에서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하얀 눈 속에 복수초가 노랗게 피고,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무던히 맺었다고 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비바람 속에서, 피어날 것들은 피어 아름답다는 소식은 방안까지 멀리까지 들려온다. 봄은, 봄바람은 그렇게 추위와 함께 작고 아름다운 꽃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봄은, 봄바람은 새싹 또한 꽃이 된다. 움트는 새싹을 보라. 꽃처럼 어여쁘지 아니한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못 하는 것이 없다는데 정말일까? 정말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흘러가는 세월도 막을 수 있을까? 사시사철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까? 자연을 거스를 수 있을까?
자연을 노래하고, 봄을 노래한 옛 시조들 중 몇 수로 봄을 말해본다. 고려 시조 중 가장 뛰어나는 시조, 누구나 알고 있는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 춘심(一枝 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배꽃과 달빛과 소쩍새 이야기로 임을 그리는 마음, 감동적일 수밖에.
조선조 중엽 선조 때 ‘성산별곡星山別曲’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의 가사를 쓴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조, -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임 계신 데 보내 고저 임께서 보신 후에야 녹아지면 어떠리. 나무에 꽃처럼 쌓인 하얀 눈꽃을 꺾어 임에게 보내고 싶다. 눈꽃은 임이 보고난 후 녹아 다오. 애절하기 짝이 없다.
옛날에는 9곱하기 9해서 81일 되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동짓날 화선지에 매화나무를, 그리고 81송이의 매화꽃을 윤곽만 그린다. 그리고 매일 한 송이씩 색칠을 한다. 화창한 날엔 진하게, 흐린 날엔 연하게, 비바람 불면 어둡게 색을 입혀 81송이의 매화꽃을 완성시킨다.
화선지의 81송이 매화꽃 색칠이 끝나면, 창밖에 매화꽃 생화가 피어난 봄이 와 있단다. 옛 선비들은 추위를 보내는 세월도 멋 그 자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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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자/한국펜클럽 미동부지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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