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저녁 퀸즈의 메도우 코로나 팍에서 열린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1941~ ) 고별공연을 보았다. 세 시간여 동안 꼬박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전설의 가수는 초청가수 한 명 없이, 빨간 반팔 티셔츠에 검정 재킷을 입고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고 몸을 흔들었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몸매, 짧은 은발, 변함없는 목소리의 그가 77세라니, 관객들은 노래 한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했다.
몇 시간 전부터 메도우 코로나 팍 잔디밭에 담요를 깔고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들뜬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던 관객들은 공연 30분 전부터 아예 모두 일어서 있었다.
첫 곡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 )’가 나오자 수천 명의 관중들은 모두 춤을 추었다.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의 음악 감상을 방해 하지도 않고 과격하게 춤을 추느라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몸을 조용히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양팔을 흔들면서, 손뼉을 치면서 흥겨워했다.
내게 가장 좋았던 곡은 역시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이 노래를 열심히 듣고 부르던 젊은 시절이 기억나고 한국에서, 미국에서 열심히 달려왔지 싶어 “그동안 애 썼어”하고 나 자신을 위로도 해주고 싶었다.
둠이 내려앉은 무대 오른쪽으로 1964년 세계박람회가 열렸던 뉴욕스테이트 파빌리온 높은 벽에 하얀 네온 조명 ‘귀향 환영(WELCOME HOME)‘이 공연 내내 눈에 띄었다.
폴 사이먼은 어려서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학교를 다녔고 1950년대부터 아트 가펑클과 공연활동을 시작했다. 따로, 또 같이 노래하며 60여년 가수 생활을 마친 뒤 고향 퀸즈에서 컴백 홈 공연을 하는 가수, 부러웠다. 천부적 음악적 재능도 명예도 재산도 아니라 단지 그에게는 돌아올 고향이 있음이었다.
그는 다 늙어 고향 사람들 앞에서 ‘지난 세월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요, 참 열심히 살았지요, 그리웠어요’ 하고 노래로 인생 고백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어디로 돌아갈까? 과연 돌아갈 고향은 있는 것일까? 한국에, 뉴욕의 플러싱, 베이사이드 등 여러 지역에 고향이 있지만 내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엄마, 아버지, 우리 6남매가 함께 살던 부산 부전동 집이다.
수돗가에서 눈만 내놓고 새하얀 비누칠을 한 엄마는 마당에서 노는 나를 돌아보고 “어헝” 하고 놀렸고 난 깜짝 놀라면서 좋아라 웃었다. 아버지는 잔칫집에 다녀오면 양주머니 가득 사탕을 넣어 갖고 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저녁 시간이면 살아있는 장어가 가득 담긴 커다란 고무대야를 머리에 인 아주머니가 “꼼장어 사려” 하고 골목을 외치고 다녔다. 엄마가 장어 장수를 불러 몇 마리를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는 장어를 꼭 잡고 순식간에 껍데기를 벗겼다. 토막으로 잘라 초고추장과 함께 주면 맛있는지, 징그러운지도 몰랐다. 그저 언니오빠가 달려들어 먹으니 어린 나도 질세라 같이 먹었다. 그러다가 입을 밥에 문 채 뒤로 꽈당 넘어져 잠이 들곤 했다.
작년 여름 10년 만에 한국에 가면서 그 집을 가고 싶었다. 언니오빠들과 묻고 물어서 찾아갔더니 그 집은 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이 전봇대는 그대로다. 우리집 대문 옆에 있었다.” 남동생이 집터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봇대를 발견하며 신기해했다. 복잡한 거리와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린 부산 시내는 더 이상 내 고향이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국전쟁 중 이북의 고향을 떠난 이, 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겨버린 이, 일찌감치 유학을 떠나 못살던 고향만 기억하는 이 등 돌아갈 고향이 없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플러싱이고 롱아일랜드이고 팰팍일 것이다. 그 안에 우리들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로 자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후손들에게 고향을 만들 기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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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 뉴욕주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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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어쩌면 우리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몰라요. 있어도 없는 시간들, 원고지 속에 숨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멋진 감상입니다.
가슴에 와닿는 스토리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