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넬대생, 입학 초 외로움 다룬 유튜브 동영상 화제
대학 입학 초 흔히 겪는 외로움을 주제로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 화제가 된 에머리 버그만의 동영상 속 모습. <뉴욕타임스>
‘친구 없는 여자애’란 꼬리표 때문에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1년 전 코넬대학 신입생 시절 ‘디지털 미디어’(Digital Media) 과목에서 자기소개 동영상 제작 프로젝트를 받았다. 동영상의 내용으로 대학에 갓 입학해서 첫 몇주간 느껴야 했던 실망감을 다루기로 했다. 대학 입학 첫 몇 주 동안은 그야말로 방황과 혼란의 시기였다. 영혼 없는 대화가 지겨웠고 새내기면 누구나 가는 파티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찾지 못해 캠퍼스 생활은 갈수록 어색해져만 갔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많은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멋진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다. 10학년 때부터 대학 진학 준비를 시작했고 11학년 내내 과외 활동과 AP 과목 수강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12학년 때는 대학 입학원서 준비에 모든 정성을 기울인 결과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노력의 대가가 나의 대학 입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만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처럼 생각됐다는 것이다. 개강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신입생들은 친구들과 떼를 지어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이 더욱 힘들게 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내 모습은 비참했다. 남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나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원인이라는 자책감에 나 자신을 비난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캠퍼스 생활 적응에 실패하면서 소셜 미디어에 쏟아붓는 시간만 늘어갔다. 예전 친구들의 대학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 시도 때도 없이 소셜 미디어를 확인했다. 친구들은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사진과 글만 올릴 뿐 나에게는 연락 한 번 없었다. 나름대로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려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내가 패배자라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단순히 친구를 사귀기 위한 거짓된 관계는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첫 한 달 동안 왜 내가 원하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동영상 제작 계기로 이어졌다. 나의 외로움을 주제로 한 4분 30초짜리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나의 대학 진학 적응기’(My College Transition)란 제목을 달았다. 제작한 동영상은 담당 교수와 친구 몇 명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유튜브에 올렸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의 조회 수는 현재 약 27만 5,000만 회를 넘었고 수백 개에 달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세계 각국에서 동영상을 본 학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고맙다는 인사 연락도 끊이지 않았다. 여러 대학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동영상을 방영해도 괜찮겠냐며 허락을 요청하는 연락도 날아왔다. 프리랜서 ‘영상 디자인’ 일자리를 제의받기도 했고 인터뷰도 수없이 진행했다. 심지어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 외로움은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는 사실이 기뻤다. 고립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처지를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교훈도 얻게 됐다.
대학 생활 2년째로 접어든 지금, 신입생 시절 나의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절실히 깨닫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첫 학기를 준비하는 일도 산더미 같은데 친한 친구부터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이었다. 대학 진학은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의 시기다. 대학에 진학하면 그토록 편한 집을 떠나 전혀 낯선 지역에서 혼자 생활해야 하는 힘든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 입학 뒤 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애초부터 갖지 말아야 했다.
동영상 공개 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남녀노소를 떠나 새 직장에서,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또는 은퇴 후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연이었다. 외로움 뒤에는 자칫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는 자기 비난과 자기비판이 찾아오기 쉽다. 대학에서의 내 사회생활은 엄청난 시행착오 그 차제였다. 캠퍼스 내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직접 부딪혀 본 뒤에야 나와 잘 맞는 여러 커뮤니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영상을 만든 지 1년쯤 지난 지금 나는 대학 생활에 어느 정도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 입학한 새내기들을 보면 나와 같은 힘든 전환기를 겪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들과 내가 1년 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들을 나누고자 한다.
▲대학에는 ‘고등학교 단짝’은 없다
대학에서 동네 친구만큼 가까운 친구를 만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타지의 대학에 진학하면 전에 경험 못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볼 기회가 생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각자가 지닌 독특함,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나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동네 친구들을 기억나게 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릴 적 동네 친구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소셜 미디어는 현실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 쏟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소셜 미디어가 점점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나보다 더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나보다 친구를 더 많이 사귀었는지를 비교하려고 소셜 미디어를 찾는 시간이 늘었다. 그러던 중 나의 불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셜 미디어는 ‘언제나 마음껏 즐겨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중에 주입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실패한 삶이고 사진으로 남길만한 행복의 연속이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이 소셜 미디어가 던지는 메시지다. 대학 생활에 대한 각자의 경험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나의 대학 생활도 남들과 다를 수 있음이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적응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캠퍼스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중압감을 안고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새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완벽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 친구를 만들려면 적극적인 성격이 필요하지만 소극적인 성격의 대학생은 실패를 경험하기 쉽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고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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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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