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5년 전 서울 마포구의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에서 다음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동안 수차례의 회의에도 노사 간 의견은 좁혀지지 않은 채 말싸움만 반복됐다. 보다 못한 공익위원 교수 한 분이 소리쳤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인상률을 내놓고 서로 엎치고 메치는 게 말이 되냐, 이게 무슨 회의냐”고. 또 하루는 당시 근로자 측 위원이 벌떡 일어나 공익위원과 사용자 측 위원에게 일장 훈시를 하고 퇴장하기도 했다. 그는 그 뒤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상공부 담당 사무관으로 최저임금위원인 담당 국장과 함께 참석했던 필자의 눈에는 싸움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십 년이 흘러 경제는 성장하고 사회도 발전했지만 최저임금위원회 운영은 과거 그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지난 1988년 도입됐다. 노사 간 성실한 협의와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지만 현실은 합리적인 기준점 없이 매년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32회의 최저임금 결정이 있었지만 노사 간 합의로 마무리된 것은 7번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싸움 끝에 표결로 처리됐다.
그도 그럴 것이 노사 양측은 처음부터 합의가 될 수 없는 인상률을 제시해왔다. ‘55% 대 0.5%.’ 최근 5년간 노사 양측이 첫 협상 테이블에서 내민 조건을 살펴보니 근로자 측은 평균 55%, 사용자 측은 평균 0.5% 인상안을 각각 내놓았다. 25년 전 공익위원의 말마따나 서로 엎치고 메칠 수밖에 없는 차이다.
고성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30년을 버텨온 끝에 7일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이나 반드시 이뤄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단순하게 따지면 모두가 지급해야 할 임금의 최소 수준이라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임금 인상의 중요한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구로구에서 직원 7명을 고용해 금형공장을 운영하는 고향 친구는 종업원들이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지만 올해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탓에 최소 10% 이상의 임금 인상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물가상승률 등 객관적인 지표를 산식(formula)으로 명문화해 적정한 인상구간을 먼저 설정한 뒤 노사 협의로 최종 합의점을 찾는 방식이다.
정부가 구간설정위원회를 만들어 최저임금을 예측 가능성 있는 수준에서 논의하자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판단된다. 객관적인 산식이 있으면 누구나 다음 연도의 최저임금을 대략 예측할 수 있다. 독일은 협약임금 인상률을 기준으로 하고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물가상승률과 임금인상률을 함께 조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55% 대 0.5%라는 100배 이상의 간극에서 출발하는 무의미한 협상과 구태로 인한 사회적 낭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번만큼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이것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올해 우리가 반드시 내디뎌야 할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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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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