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년 연산군은 아버지인 성종의 총애를 받던 엄숙의·정숙의가 참소해 자기 어머니인 윤씨가 폐위되고 사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곧바로 두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멍석으로 덮어놓고는 두 사람의 아들 이항과 이봉을 불러 몽둥이로 치라고 말했다. 깜깜한 밤이라 멍석 밑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인 것을 몰라본 항은 몽둥이로 쳤고 이를 눈치챈 봉은 몽둥이를 놓고 눈물만 흘렸으나 두 여인은 결국 맞아 죽었다. 갑자사화는 이렇게 사람을 멍석으로 말아놓고 몽둥이로 뭇매를 가한 이른바 멍석말이로 시작한다.
멍석말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에서 엿볼 수 있다. 향약의 4대 강목 중 하나인 과실상규(過失相規)의 속 내용은 동네 유력자, 즉 양반이 상민과 노비 등의 잘잘못을 가려 처벌하는 것이다. 불효하거나 친척 간에 화목하지 않는 등 모두 여덟 가지 잘못을 저지르면 멍석말이를 하도록 했는데 전형적인 사형(私刑)이다.
사적인 형벌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중국 명나라 율법인 대명률에는 직계존속이 피살당하는 현장에서 자손이 범인을 살해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규정이 있었다. 서양에서 사형을 일컫는 린치(lynch)라는 말은 범죄는 많고 공권력은 약하던 18세기 미국 개척시대 때 만들어졌다.
1774년 버지니아주 치안판사로 부임한 찰스 린치는 범죄를 없앤다며 적법한 절차 없이 범죄 혐의자를 처벌할 수 있는 사형법을 만들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는 사형을 금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2년 인도 델리에서 일어난 ‘여대생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은 온 세상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한 여대생이 밤에 버스에 탔다가 버스 운전사를 포함한 7명의 승객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가해자들은 여자가 남자와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가했다. 3년 뒤에는 교도소에 있던 가해자가 군중에게 살해당하는 또 다른 사형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근 검찰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친 것과 관련해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개인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는 글을 올렸다.
그는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비판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반론도 확실한 만큼 현명한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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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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