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익숙한 인덱스펀드가 1975년 월가에 처음 등장했을 때 ‘바보펀드’로 조롱을 받았다. 주가지수에 편입된 모든 종목에 투자하기 때문에 주식분석이 있을 리 만무했고 이렇다 할 투자기법도 없어서다.
그런데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여느 펀드에 비해 반의반도 안 되는 저렴한 수수료다. 주식 사고팔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 운용비용이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혁신적 발상의 주인공은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설자다.
고학으로 프린스턴대와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월가에 입문한 그는 한때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까지 거쳤다가 1974년 지금의 뱅가드그룹을 설립했다. 뱅가드는 프랑스 나폴레옹 함대를 격파한 영국 넬슨 제독의 전함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필라델피아 본사 건물도 전함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인덱스펀드가 주식형 펀드의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를 추종하는 1호 인덱스펀드인 ‘뱅가드500’은 첫해 1,000만달러 유입에 그쳤지만 지금은 4,000억달러가 넘는다. 뱅가드의 전체 운용 규모는 자그마치 5조달러. 블랙록에 이어 세계 2위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건초더미를 사라”는 그의 말은 인덱스펀드의 교리로 통한다. 주식투자의 ABC인 분산투자의 유용성은 뱅가드펀드가 입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뱅가드500’의 43년 연평균 수익률은 무려 10.7%에 이른다.
인덱스펀드의 창시자 보글이 지난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에 그가 남긴 발자취가 너무 크다. 투자자에게는 한없는 천사였지만 헤지펀드와 증권사에는 눈엣가시였다. 그는 투자자에게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가져다줬고 세계적인 수수료 인하 경쟁을 유발했다.
보수만 챙기려는 거대 증권사와도 맞섰다. 그가 ‘세인트 존(Saint John)’으로 추앙받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워런 버핏은 2017년 연례 투자자 서한에서 “미국 투자자들을 위해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을 위해 동상을 세운다면 그 주인공은 보글이어야 한다”며 “그는 나에게 영웅”이라고 격찬했다.
월스트릿 저널(WSJ)은 그의 부고를 전하면서 “미국 투자자들은 최고의 지원자 중 한 명을 잃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보글을 “30년 넘게 투자자 권리를 위해 헌신한 십자군”이라고 칭송했다.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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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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