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비슷한 이름에 제품 포장도 거의 같다보니 같은 제품이라 생각하고 샀더니….” 한인타운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이모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주 매운 맛으로 소문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사러 한인마켓에 들러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 물을 끓이고 라면봉지를 뜯는 순간 구입한 라면이 팔도의 ‘불낙볶음면’인 것을 알아차린 이씨는 아연실색. 이미 봉지를 뜯은 데다 환불하기도 귀찮아 그냥 먹기로 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고 이씨는 “먹기는 먹었지만 상표명도, 디자인도 거의 같다보니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위 ‘대박’을 친 제품이 나오면 이를 모방한 ‘미투’(me-too)제품이 곧 바로 출시되는 것이 한국 식품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한국에서 수입된 이들 미투 제품이 한인마켓의 매대에서 ‘원조’ 제품과 섞이다보니 한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것이 원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는 자조섞인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투제품은 경쟁업체의 인기 제품을 모방한 유사 제품을 일컫는다. 일종의 표절이지만 한국 식품업계에서 모방제품이 워낙 많다보니 미투 제품이 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아 이제는 일상화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한 한인마켓 매니저는 “비슷한 제품명에다 디자인도 유사한 제품들이 비일비재하다”며 “때때로 마켓 담당자들도 겉모습만 보고 매대 진열을 잘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정도”라고 말했다. 원조 제품 따라하기는 식품업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소주의 경우 롯데주류의 과일 소준인 ‘순하리 처음처럼’이 먼저 출시돼 인기를 끌자 경쟁 주류업체들이 과일 맛 소주를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식품업계에서 미투 제품은 모방과 따라하기 차원을 넘어 이제 판매 전략으로까지 사용되고 있다. 초기 개발비가 적게 들고 이미 형성된 수요층이 있어 시장 진입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미투 제품 출시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원조 제품의 유명세를 후광 효과로 활용해 오히려 판매량에서 원조 제품을 누르는 경우를 발하기도 한다. ‘허니버터칩’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물론 미투 제품을 놓고 법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품 모방으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원조 업체가 승소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앞서 예로 든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팔도의 불낙볶음면이 그중 하나다. 2014년 삼양식품이 법원에 표절을 이유로 팔도의 불낙볶음면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보다 앞서 오리온이 1974년 초코파이를 출시한 뒤 롯데 쵸코파이(1979년 출시)에 대해 상표등록 취소 소송을 벌였다가 패소한 사례도 있다.

한 한인 식품수입업체 대표는 “한국 식품업체들이 타사 제품을 베끼는 일이 허다하다 보니 이제 서로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며 “따지고 보면 미투 제품에서 자유로운 업체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 식품업체 미주법인의 한 관계자는 “미투 제품이 관행이 되어버린 이면에는 한국 식품업체들이 연구개발에 투자 의지가 그만큼 적다는 현실이 반영돼 있다”며 “현재보다 제품 개발에 1~2% 더 비용을 들인다면 표절 관행을 상당 수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