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볼리바르는 1783년 지금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 16세기 초 스페인에서 남미로 이주해 엄청난 부를 쌓은 부호 집안 출신인 그는 프랑스혁명이 한창이던 18세기 말 유럽으로 건너가 자유와 평등 같은 혁명 이념에 물들었다.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를 해방시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념에 불타던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 1811년 베네수엘라가 라틴아메리카 첫 독립국가가 되는데 일조했다. 1819년 보야카 전투와 1821년 카라보보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된 그는 1819년부터 1830년까지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를 포함하는 ‘그란 콜롬비아’의 대통령을 역임한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 내부 분열로 나라는 쪼개지고 한때 남미 최고 부자였던 그의 재산은 독립운동을 하며 소진돼 그는 실망과 좌절 속에 빈털터리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생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는 아직도 남미인들의 귀감으로 남아 있다.
그를 가장 추모하는 나라는 그의 고향 베네수엘라다.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볼리바르 혁명’ 운동을 통해 집권한 우고 차베스는 1999년 나라 이름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바꿨다. 차베스는 민중의 삶을 개선하겠다며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늘리고 기름을 물 값보다 싸게 국민들에게 공급했다. 다 2000년대 초 고유가 덕분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지금도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으며 최대 석유수출국의 하나다.
노무현 집권 시절인 2006년 KBS는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반기를 들며 민중의 복지를 위해 싸우는 우고 차베스 특집을 내보냈으며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그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석유 이외에는 내세울 산업도, 수입도 없던 국가재정은 과도한 복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거덜이 났고 실업률과 인플레는 치솟기 시작했다. 차베스는 2013년 암으로 죽고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가 뒤를 이어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17년 국가부도가 났고 작년 인플레는 137만%에 이르렀으며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국민들이 외국으로 탈출하면서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가 이처럼 철저히 망하기도 힘들다.
수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견뎌온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35살 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23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선언하며 독재자 마두로의 사임을 촉구한 것이다.
미국과 대다수 남미국가는 그를 합법적인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했고 수천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그를 에워싸고 환호를 보냈다. 그가 대통령임을 선언한 23일은 61년 전 군부 독재자 마르코스 히메네스가 민중의 저항으로 물러난 날이다.
그러나 마두로가 순순히 굴복할지는 의문이다. 2018년 야당의 보이콧 속에 68%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탄압을 일삼으며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는 등 독재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소위 한국의 ‘진보 지식인’의 침묵이다. 한때 ‘베네수엘라 모델’을 외치던 이들은 이번 사태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게 나라냐’며 들고 일어난 민중을 욕할 수도, 그렇다고 자신들의 우상이던 차베스와 그 후계자를 비난할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베네수엘라 사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복지의 허구를 입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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