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5일 태어난 내 피 한 방울도 안 섞인 외손자 Elijah 때문에 나는 '상사병'을 앓느라 계속 신음하고 있다. 상사병이란 주로 사춘기 때 특정 이성에 대한 연정에 사로잡혀 생기는 병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겪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는지 태어나자마자 날 보고 빵긋 웃으며 눈을 맞춰 반색하더니 내 가슴을 제 침대 삼아 쌕쌕 잠도 잘 자곤 했다. 점점 커가면서 하는 짓마다 경이로워 내가 경탄성을 내지르며 오른 손바닥으로 내 오른 쪽 무릎을 치노라면 저도 제 오른 쪽 무릎을 제 오른 손바닥으로 내려치면서 깔깔 댄다.
말을 하기 시작한 후 두 살 때인가 제 외할머니와 내 귀에다 대고 '사랑해, 참말이야 (I love you, true story) '라 하더니 얼마 전엔 큰 종이에다 큰 글씨로 '사랑해, 어떤 일이 있어도(I love you, no matter) '라고 쓰고 제 이름 사인까지 해준다.
일찍 조산해 인큐베이터에 2개월 이상 있다가 집으로 온 제 여동생 Julia를 조심스럽게 안고 '난 네 오빠 Elijah야. 난 널 사랑해, 언제나 항상 늘 널 사랑할 거야( I am your brother Elijah. I love you and I always will.)'라며 애기 이마와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이런 Elijah를 보고 있노라면 마냥 빨려들고 너무 너무 사랑스러워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온다. 아마도 모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리라. 나보다 훨씬 먼저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이 해 준 말 '두고 봐라. 네가 손자 손녀를 보게 되면 네 자식들 때보다 천만배 이상 더 사랑하게 될 거다.'란 말을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대로 모든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 보고 듣고 배워 모방하게 되는 것이라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일종의 표절이고 언어를 배워 구사한다는 것부터 표절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란, 말이 필요 없는, 말 이전의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남녀 간 운우지락(雲雨之樂)의 절정에서 부르짖는 신음소리부터 갓난 애기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로 옹알거리는 소리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통한다 하기보다 불가분의 관계로 같은 하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덴마크의 철학자 겸 신학자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의 실존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1941)'에서 '절망은 병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병으로부터 치유 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행복이다'라고 주장했다지만 어쩜 그가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를 한 게 아니었을까. 그가 '상사병'을 앓아보지 못 한 까닭 아니었을까.
한없이 끝없이 서로 상(相), 생각할 사(思), 앓을 병(病)을 앓다 보면 이 '상사병(相思病)'이 어느 틈에 '상사약(相思藥)'이 되어 영세무궁토록 행복한 '영생불멸(永生不滅)'에 이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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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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