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발발 69년… 90대 노병들의 생생한 증언
▶ ■백마부대 신용진 예비역 일등상사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했던 한국전(6.25) 발발 6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90대 한인 노병을 만났다. 거동도 불편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증언에는 힘이 넘쳤다.
“젊은 사람들은 모를 거야. 수류탄 하나 들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전우들…. 혹시라도 한국에 가게 되면 그들의 무덤을 다 찾아봐야지.” 백마부대 신용진(92·사진) 예비역 상사는 47년 입대해 1950년 한국전 발발 당시 22살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진격해오던 북한군의 탱크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한국군이 인민군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육탄돌격대.’ 수류탄 하나 들고 몸으로 전차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흔한 전쟁 무용담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신 상사는 “과연 누가 그러한 임무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라며 어려운 순간들을 되돌아봤다.
신 상사는 작전을 앞둔 전우들과의 마지막 밤을 회상하며 “다음 날이면 생사(生死)가 갈리는 비장한 밤이었다”며 “대부분 낙오자였던 부대원들이 육탄돌격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고 ‘나의 희생으로 다른 동료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전차에 뛰어들었다”고 회고했다.
1977년 도미해 메릴랜드에서 살고 있는 신용진 상사는 그동안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바쁜 이민생활도 이유지만 심장병으로 인해 장기간 비행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90대 노병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전우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소를 다시 찾는 것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한국전쟁의 아픔을 조용히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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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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