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가를 얻었다면 ‘방콕’ 할 일은 아니다. 몸은 잠시 일터를 벗어났을지 모르나, 정신은 여전히 일에 묶이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것은 매여 사는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다. 연휴 때면 발표되는 여행객 숫자는 요즘 늘 사상 최대 규모다. 일상에 지친 이들은 이번 여름에도 또 어디론가 떠나려 하고 있다.
LA 한인타운에 집이 있는 유재일 씨 부부는 한 달에 3주 정도는 집을 떠나 산다. 60대 중반인 그는 4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막상 발을 떼지 못하는, 집으로 상징되는 일상에서 탈출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길 위에서 해방구를 찾은 듯한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한번 나가면 4,000마일 정도를 다녔으나 요즘은 1,000 마일 정도로 이동거리가 길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그곳 주민이 되어 산다.
머물 곳은 따로 예약하지 않는다. 사방에 무료 캠핑장이 많아 여태 숙소를 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곳곳에 노천 온천도 적지 않아 특히 샤워 때문에 야외생활을 주저하는 여성들의 걱정을 덜어 준다.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계절에 따라 먹거리가 풍성한 곳을 찾아 떠나는 수렵여행도 즐기고 있다. 예컨대 지난 5월에는 오리건과 워싱턴 주 경계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올라가 ‘썩어도 준치’라는 준치 낚시 재미를 봤다. 바다에서 알을 낳기 위해 댐 아래 몰려 온 팔뚝만한 물고기를 60여 마리 걷어 올려, 먹고도 남은 놈들은 얼려서 가져 왔다. 이 무렵은 워싱턴 주에 굴 채취가 허용되는 때이기도 해서 시애틀 인근 주립공원으로 올라가서는 신선한 생굴을 원 없이 먹는 호사도 누렸다.
지난 6월에는 열흘 일정으로 콜로라도 강 탐사를 다녀왔다. 차 뒤에 작은 중고 보트를 하나 매달고 애리조나 주 파커에서 레익 하바수, 앤틸롭 캐년, 바다 같은 레익 파웰 등을 거쳐 호스 슈 밴드에 이르는 콜로라도 강을 훑었다. 이 여행에는 마침 한국서 다니러 온 친지도 동행했다.
여행지는 처음에는 61개소에 이르는 국립공원 등 명승지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비교적 덜 알려진 지역 명소를 많이 찾는다. 꼽아보니 대략 15개 주 정도를 다닌 것 같은데 주로 유타, 콜로라도, 워싱턴, 오리건, 와이오밍 등 서부 쪽이 많았다. 캐나다 쪽도 다녀왔고, 알래스카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감수성의 질에 따라 느끼는 것도 다를 여행담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나눈다. 여행정보는 미리 조사한 후 떠나지만 생생하고 구체적인 지역정보는 공원 레인저 등을 통해 현지에서 얻는 게 많다.
4년 전 미니밴으로 시작한 그의 여행은 사륜구동 차와 트레일러 시대를 거쳐 이제 RV 시대를 열었다. 잠자리도 모텔에서, 텐트, 트레일러를 거쳐 안락한 RV 침대에 이르렀다. RV 뒤에 작은 사륜구동 차 하나를 매달고 다니니 기동력도 높아졌다.
유재일 씨 부부가 즐기는 길 위의 삶은 무엇보다 경제문제가 해결됐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개스비에 식비 등을 더한 여행경비는 월 2,000여 달러. 집에만 있을 때보다 오히려 돈이 적게 든다고 한다.
떠나야지, 은퇴하면 떠나야지 하면서 막상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재정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보다는 아직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되묻는 그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도 일단 발을 떼면 사라질 근거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다니느냐구요? 여기만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이 많잖아요.”
월초에 집을 떠나 월말께 돌아오는 유목민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길에서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폐암 말기의 한 70대 미국인은 혼자서 지상의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잊혀 지지 않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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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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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신변안전 문제가 가장 걱정입니다.
'아직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그것이 문제였군요! 과연 무엇을 놓아야 할까... 오늘은 그 고민을 좀 해봐야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