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2박 3일 일정으로 잭 프린들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현재 빙햄튼 시검시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잭은 1967년 2월 어느 날 월남 나트랑 소재 미8야전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전우다.
어느 덧 52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미국에서 다시 만나 죽마고우 처럼 절친으로 지내는 지 4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거의 매년 우리가 3시간 반 거리의 빙햄튼 인근에 있는 친구집 방문을 한 두번씩 했다. 얼마나 반갑고 가깝게 우정을 즐겼으면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팔순의 나이들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장거리 운전이 불편해지기 시작, 2년 전 잠깐 방문한 걸 제외하고는 줄곧 상호왕래가 끊어진 상태. 지난 달 지금껏 받아본 생일축하 카드중 가장 멋있고 좋은 걸 받고 답례로 전화를 일단 걸게 되었다.
정성껏 구해서 눈물 겨운 축하문에다 끈끈한 우정이 그득 담긴 카드. 정말 말로는 감사 표현을 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고마운 배려, 술을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는 옛날 생각을 되새기며, “잭, 정말 감격스럽다. 내 생전 이렇게 좋은 생일 카드를 받아보긴 처음이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희 집을 방문한 게 지난 5년 간 서너 번이나 되는데 어찌해서 넌 우리를 찾아 볼 생각을 안 하는가!”
“오! 미안, 그러고 보니 정말 내가 잘못했네.” 하고는 옆에서 채근대는 와이프인 매리 루를 바꿔줬다.
우린 오랫만에 근 30분간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됐다. 와이프 왈, “잭이 나이가 들더니만 집을 떠나는 걸 싫어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그 좋은 관광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 일절에다 장거리 운전까지 피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푸념.
그건 나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말을 한 뒤였는데 매리 루 왈, 리무진을 타고라도 내려 오겠다고 했다.
“잭! 이번에 내려오지 않으면 다시는 날 볼 생각은 접어야 할 걸!”. 그랬더니 놀래는 눈치였고 며칠후 전화가 따르릉, “태원! 다음 주 금요일 2박 3일 일정으로 내가 운전해서 내려가겠다.”는 낭보를 전했다.
그 다음날 부터, 아들 애가 쓰던 방 손을 보기 시작, 잭 부부가 묵을 침실을 천정부터 벽은 물론 바닥 까지 대 청소를 시작, 불필요한 집기, 물건들을 정리하고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새 침실로 꾸몄다. 침대 커버는 물론 시트 등 전부 새 것으로 바꿨다.
한국에서 불알 친구가 온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 법석을 떨었을 까 생각하며 정말 스물 일곱 한창 나이에 전쟁터에서 같은 소속도, 국적도 다른 현역 군인들끼리 만나 인연을 맺었는데 부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애들 까지도 아버지 친 형제를 대하듯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된 우리 두 집, 정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잭은 나 보다 5개월 연배, 지난 9월로 만 80세, 두 내외가 아직도 건강하다고 하면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40대 젊은이들이 혀를 휘두를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식욕은 이십대가 울고 갈 정도. 전쟁터에서 손 끝 한 개 다치지 않고 지금에 이르도록 좋은 건강을 유지하며 현직에서 뛴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양식은 말 할 것도 없고 한식, 왜식에다 중식까지 즐기는 호식가들.
마지막 3일째 떠나는 날 점심에는 양장피에다 탕수육, 해물 짬뽕을 곁들인 새우볶음밥까지 접시를 거의 다 비우다 시피 중화요리를 즐겼다. 물론 처음 드는 음식들이었다.
나이가 들다보니 고향, 학교 친구들은 하나 둘 씩 다 떠나가 버렸고 주위엔 아무도 없는 신세, 52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변함없는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잭 내외가 있음에 깊은 감사를 올리며 주말 단상을 접는다.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 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
전태원/자유기고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