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에 안식년을 대주교님께 청했다. 내가 청하는 것은 대주교님이 다 받아 주신다. 로마에서 3개월 안식년으로 받고 정말 신이 났다. 내 평생에 유럽에서 3개월을 지내는 것이 꿈만 같았다. 로마로 가기 며칠 전에 팰팍 마이클 성당의 라일리 신부님을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현재의 어니신부 사무실에서 둘이 마주 앉은 것 같았다.
내가 안식년이 끝나면 메이플우드 성당에서 여기로 오고 싶다고 하니, 바로 그 자리에서 흔쾌히 자기도 올해 은퇴이니 자신이 은퇴 편지를 쓰고 너도 편지를 쓰라는 것이다. 이제는 한인 신부가 해야 될 때라고 하신 것 같다. 그냥 일사천리로 서로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로마로 떠났다. 그리고 로마에서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우리 교구에서 같이 온 매크론 신부가 교구내 한 사제관에서 불이 나 어떤 신부가 돌아가셨단다.
나는 별일도 다 있다 싶었지만 설마 그게 라일리 신부님이고 팰팍의 마이클 성당일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라일리신부는 정말 줄담배이셨다.
그리고 안식년을 마치고 메이플우드로 와 대주교님께 편지를 썼다. 그런데 인사 이동 시기가 다 지나가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아마 안되나보다. 메이플우드에서도 나는 임기가 2년이 더 남아있었다. (우리는 6년 6년 합쳐 12년을 한다) 안되도 그만이었다. 메이플우드 성당은 정말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성당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에 ME를 발표하러 갔는데 대주교님이 아무리 연락을 하려고 해도 안된다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브라질 상파울로로 전화하시며 마이클 성당으로 7월 1일까지 가라고 하신다.
메이플우드에서 10년간 한국말만 했는데 내가 영어가 될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결정이 늦어진 것이 디너리에 다른 신부들이 한국신부는 아직은 안 된다며 반대해 막판까지 결정을 못했단다. 이거 인종차별 아닌가? 무슨 이유로 한국신부가 안 된다고 한 것인가? 나중에 디너리에서 물으려고 했는데, 다 뒤에서 몇 사람이 꾸민 것이지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도착해 보니 사제관은 불이 나 창문도 부엌 문도 합판으로 막아놓고 보좌신부인 나를카도, 내 세크리터리인 팻도 그리고 본당 신부라고 온 나도 다 어리벙벙,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불이 난 사제관은 정말 참 처참했다.
교구에서 나보고 옆의 레오니아 성당 사제관으로 들어가 당분간 살라고 그런다. 하지만 자기 사제관을 버리고 어디 가냐? 그래서 정말 청소가 안돼 불결하기짝이 없는 방에 짐을 풀며 마이클 성당의 첫 날을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에 올 때 난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였으니 더 잃을 것도 없고 더 물러설 데도 없었다. 하느님이 다시 시작하라 하신다.
<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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