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명 작가들이 코로나 19를 피해 한적한 별장에서 쓴 ‘피난기’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2016년 프랑스 최고권위 공쿠르상을 받은 레일라 슬리마니(38)는 시골 별장에서 지내면서 떠오른 단상과 일화 등을 정리한 ‘격리 일기’를 일간지 르 몽드의 온라인판과 종이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일기에는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오늘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방의 창틈으로 언덕 위의 여명이 동터 오는 것을 보았다. 풀잎에 서리가 내리고 보리수 나무에는 첫 싹이 움텄다 ’고 적었다.
이에 대해 민중의 분노와 공포에 무신경한 향락적 취미, 베르사이유 트리아농 궁에서 농부 흉내를 낸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가장 사치한 왕비로 알려진 앙투아네트는 초가집을 짓고 농부 옷을 입고 직접 소의 우유를 짜는 생활놀이를 즐겼었다.
또 한 명의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는 정부의 이동제한령이 발효되기 직전 고향인 바스크 지방으로 피난 가며 ‘파리 번호판을 단 차를 갖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돼 차고에 있던 낡은 차를 꺼냈다’ 고 적었다. 이 역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좁아터진 집안에서 온 식구가 머물면서 다른 곳으로 갈 곳 없는 서민들의 고충은 안중에도 없다. 가진 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넓은 정원이나 거실에서 일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부모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벌벌 떨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켓, 병원, 델리로 일하러 간다. 또 많은 실직자들이 생계 걱정으로 잠을 못이룬다.
프랑스뿐 아니라 뉴욕의 부자들도 코로나19 재앙이 시작되기 직전 이미 커네티컷, 롱아일랜드 햄튼 혹은 멀리 플로리다까지 피난을 갔다. 최근 미국의 벙커제조업체에는 구매 문의와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최상위 부유층들은 수영장이 딸린 호화 대피소를 사들이거나 외딴 섬을 통째로 사서 피신하기도 했는데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코로나 19대피 장소로 섬을 사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영화PD겸 음반사 경영자인 데비지드 게펜은 인스타그램에 5억5,000만 달러짜리 요트 사진을 올리며 ‘내 요트인 그레나딘 호에 자가격리 중입니다. “는 글을 올렸다가 욕을 먹었다.
이 코로나 시대에 작가들이 글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에 흑사병을 피해 시골마을 별장에 모인 사람들을 소재로 한 유명한 소설 ‘ 데카메론’ 이 있다. 이태리 피렌체의 피에솔레 별장으로 피신한 7명의 젊은 여성과 3명의 남성들은 각기 매일 한가지씩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가 1350년에 시작하여 1353년에 집필을 마친 1000편의 단편을 모은 이 책은 혼돈과 불안 속에 절대적인 도덕과 신성함이 무너진 현실을 직시하고 기지, 재담, 짓궂은 장난, 에로틱한 것부터 비극적인 것까지, 14세기의 삶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지난 1일 미 CNBC 방송은 사별 후 혼자된 40대 어머니가 코로나19로 사망 직전 여섯 명의 자녀와 병실 문을 사이에 두고 무전기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 했었다.
이처럼 임종 순간에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도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데 안전지대에서 유유자적한 ‘피신기’를 발표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선 이들을 조롱하는 것이고 상처를 주는 일이다. 시골에 별장이 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다들 진작 그곳으로 피난 가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재력이 자신을 보호한다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예방과 대처법이 빈부에 따라 다른 시대다. 못가진 자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코로나 19 피신기’를 발표할 때가 아니다.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겠다. 겸손한 마음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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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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