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 한 해는 ‘음악의 성인’으로 불리는 베토벤 탄생 (Ludwig van Beethoven, 1770년 12월 17일~1827년 3월 26일) 250주년을 맞는 해이다. 다가 온 고난, 결핍, 장애를 예술적인 영감으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체온 속에 늘 봄의 생명력으로 남아 있다.
인류의 역사를 음악의 역사라고도 얘기 할 수 있다. 그 만큼 음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혼의 울림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지대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과 고통을 만난다.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음악가이다. 그의 고난은 우리의 아픔으로 공감하기에 그의 음악은 더 아름답다.
고난이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고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고난을 내 삶 속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도 위기는 기회라고,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고, 고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라고 말한다. 사실 본인도 고난과 위기를 직면 할 때에 용기가 때로는 부족하다.
어느 목사님은 용기는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기란 두려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고난을 극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결과를 믿기 때문이다.
그의 장애는 음악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청각 상실이며 피하고 싶은 결핍이다. 인간은 결핍의 존재이다. 결핍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핍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베토벤은 음악을 통해 그의 결핍을 신앙적인 성숙의 시간으로 받아들였고 결핍을 통해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영적 민감성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결핍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영적 민감성을 극대화 시키고 결핍이 주는 믿음의 은혜를 공급하시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Leyden zu Freude’ ‘고난을 헤치고 환희’라는 베토벤의 좌우명이 탄생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수많은 베토벤의 작품들 중에 교향곡 9번 합창은 1824년 그가 사망하기 3년 전, 그의 고난이 가장 절정에 도달했을 때 완성된 곡으로 쉴러의 ‘환희의 송가’ 에서 영감을 얻어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되는 최초의 작품이다. 우리가 예배 때 부르는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의 테마이기도 하다.
고난, 결핍, 질병을 피하지 아니하고 정면으로 맞선 채 이룩한 베토벤의 음악은 그의 인류애를 향한 강한 의지와 결핍에서 오는 거룩한 저항력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줄 수 없어서 고난과 결핍으로 이끄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난과 결핍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과정이며 생명력 있게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축복의 증거이다.
고난과 결핍의 사람 베토벤이 탄생한 지 2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음악은 우리의 삶 속에서 치유와 회복으로 되살아 나고 있다. 되살아 난 치유와 회복 때문에 우리는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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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퀸즈프리칼리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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