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 영락없는 사극의 추노꾼이다. 머리를 묶으면 흡사 조선 시대 여성 같다.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 한창인 랜선 음악회에 동참한 어색한 내 모습이다.
올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많은 예술가가 삶의 터전인 무대를 잃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나 역시 기약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속만 타들어 갔다. 상실감은 처음엔 분노가 되었다가 체념이 되었지만,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에 점차 순응하게 되었다.
새로 닥친 영화 같은 현실에 적응할 무렵 여기저기서 감동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전세계가 봉쇄 절차를 밟으며 고립된 음악가들이 그들의 음악을 하나둘 자신만의 공간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된 무대는커녕 근사한 음향과 조명도 없이 그렇게 말이다.
뉴욕에서는 야경을 배경 삼아 피아노를 치고, 아르메니아에서는 침대에 걸터앉아 첼로를 켠다. 또 파리의 서재에서는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전송한다.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절박하게 시작한 연주가 어느덧 연주자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면서 어찌 보면 안쓰러운 이 방구석 음악회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간다.
이상한 일은 나에게도 전염되었다. 각지의 동료들과 다른 시공간에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찍는 것을 질색하고 소리며 이것저것 제법 까다로운 나였기에 절대 하지 않겠노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악기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에 앉아 태블릿으로 영상을 찍으며 좀 더 나은 소리를 위해 마이크를 달고 서툰 솜씨로 영상을 편집한다.
데드라인이 없는 이 방구석 음악회는 연습도 하다 말다 해이해지기 일쑤며 완성도도 무척 떨어진다. 게다가 조명 없이 그늘진 얼굴은 나이를 집중 조명하고 연주회장이라면 객석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자신의 음악에 집중해 멋대로 움직이는 얼굴 근육까지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녹화를 마치고 나면 맘에 들지 않는 영상과 음악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다시는 못하겠어’를 부르짖는다. 그런데도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동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찬찬히 보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벅차게 느껴지는 음악에 담은 그들의 마음에 감동하고 또 기쁘게 다음을 기약한다.
화면 속 작은 공간을 통해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오는 동료들을 응원하며,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곧이어 올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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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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