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플 & 비즈니스 - 앤드류 이 젬텍 보석백화점 대표
“제대로 알자” 미국 보석협학교서 공부, 테크롤러지에 디자인 가미해 직접 생산
▶ 하이엔드에 주력… 할리웃 스타들도 고객
선교와 홈리스, 북한 지원에도 최선

앤드류 이 젬텍 대표는“경제의 중심에 보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보석업에 뛰어들어 성공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됐다”고 밝혔다. [박상혁 기자]
팬데믹 속 경제가 꿈틀거린 곳은 주식 그리고 보석이었다.
코로나로 쇼핑·외식·여행을 즐기지 못하자 보석으로 유동 자금이 흘렀다. 샤넬백처럼 환금성이 큰 다이아몬드는 보석 재테크 투자대상 1순위로 인기가 높았다. 희소가치, 환금성으로 인기있는 하이엔드 주얼리는 시간이 지나도 반짝인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보석이 있듯 젬텍 보석백화점 앤드류 이 대표 인생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은행원으로 금융감각을 익힌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며 보석시장이 블루오션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난 40년 이상 미 전역을 넘어 전세계 보석쇼를 종횡무진했다. LA지역 대표 보석상으로 ‘헤리티지 미디어 코퍼레이션 출간 ‘로스앤젤레스’에 기록도 남겼다.
다이아몬드가 연마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 인생을 보석같이 연마했다. 작지만 강한 존재감, 비싸지만 변하지 않는 보석같이, 이 대표 인생도 그랬다.
70년대 초반 월급이 높은 은행원은 결혼상대 호감도 1순위였다. 이 대표는 상업은행 다크호스였다. 은행원으로 커리어를 착착 쌓아가는 동안 미국에서 유태인 운영 보석사업체에서 일하는 형은 이민을 권유했다.
미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공부하다보니 미 경제 중심에는 유태인이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을까. 이 대표는 경제서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나의 흐름을 찾았다. 금융계에서 쌓은 직관력으로 돈이 있는 사람들 속으로, 돈이 흘러가는 쪽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유태인들 경제의 중심에는 보석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산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다이아몬드는 유태인이 독점하고 있었다. 보석은 이동성, 현금화 편리는 물론 시간이가도 가치가 올라간다. 이게 장점이었다. 쫒던 돈 흐름은 거기에 있었다.
그 후 시간만 나면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 외국서적 판매처를 갔다. 한국 출간 보석관련 서적이 없어 일본서적, 미국보석매거진을 사서 공부했다. 은행 업무가 끝나면 두 군데 보석학원에서 보석에 대해 배웠다. 미국보석감정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일 년 동안 독학했다. 결혼 후 아내와 1980년 미국에 들어왔다.
형이 일하는 가게는 크지 않았다. 영어 배울 틈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전문용어가 넘치는 보석 비즈니스,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일한지 7년 만에 미국보석협회(GIA) 운영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보석 실물을 접하며 공부하니 더 빨리 배웠다.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했다.
LA다운타운에 도매공장을 운영하며 젬텍을 만들었다. 젬(Gem) 귀하다, 텍(Technology) 테크놀러지. 만들어 놓은 보석을 팔면 금은방이 되지만 원석에 테크놀러지와 디자인을 가미해 보석업계 트렌드를 이끌겠다는 이 대표의 야망을 담았다.
1989년 베버리센터에 ‘로즈 오브 샤론’을 개장했다. 마이클 잭슨, 자넷 잭슨, 코미디언 새미 데이비스 등 할리우드 셀리브리티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고객들이 최고급 주얼리를 원했지만 자본력이 딸려 다른 업체 주얼리를 청탁, 판매했다. 큰 이윤이 남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 때 상황을 정면 돌파했다. 소매업에서 도매업으로 전환했다. 베버리센터 매장을 철수하고 다운타운 공장에서 보석을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가 판매하자”
1992년 주얼리쇼 전담팀도 만들고 7만~8만개 디자인을 준비해 쇼만 다녔다. 대만, 호주, 벨기에를 시작으로 스위스, 홍콩, 이탈리아 등 유명 주얼리쇼에 참가했다. 라스베가스, 뉴욕 등 미전역 큰 주얼리쇼도 다녔다. 오더를 받으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해 오더 물량만큼 추가로 준비하면 바이어들은 그 물량도 구입했다. 보석을 많이 만들수록 실력은 늘고, 노하우가 축적되고, 주얼리쇼에서 트렌드도 파악했다.
매일 2,000~3,000개 보석제품을 만들어 판매되면 그게 보석업계 트렌드가 됐다. 이 때 직원이 80명까지 늘었다. 고급 보석 수요가 많아지면서 도매에서 하이엔드로 바꿨다. 갤러리아 쇼핑몰에 ‘젬텍 보석백화점’ 1호점을 열었고, 이어 시티센터에 2호점을 개장했다. 그 동안 보석생산 노하우를 집약해 하이엔드 보석에 쏟아 부었다. 거기에 캠캐드 시스템으로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완벽하게 만든다. 오더메이드 방식이다. 디지털 마케팅 시대 보석도 온라인 구매를 하지만 하이엔드 보석만큼은 대면, 실제로 봐야 구입한다.
젊은 날 돈의 흐름을 찾아 보석 비즈니스를 시작한 이 대표에게 던져진 명제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였다. 이런 고민은 재정상태와 상관없이 선교, 홈리스, 북한 지원으로 이어졌다.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변에 선한 빛을 비추려고 애썼다”는 그는 “앞 만보고 달리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며 뒤를 돌아봤다. 내 힘으로 뛴 게 아니었다. 발자국에는 감사 만이 쓰여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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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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