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한 중년여성이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같은 어른도 발레 할 수 있나요?” 너무나 겸연쩍어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당시 성인반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전공하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해보겠다고 했다.
1년이 지났을까? 꾸준히 수업에 참여한 그분이 이쯤 되면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또 다른 여성 한 분을 모셔왔다. “이 분도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배울 수 없었대요. 함께 배울 수 있죠?”
난 그 나이에 왜 발레를 배우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발레는 늘 좌절의 대상이자 무대에서 빛나는 순간 외에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반복 연습뿐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분들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여성과학자들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에게 물었다. “왜 그 많은 것들 중에 발레를 하세요?” “발레는 참 힘든 거에요. 그리고 지금 시작해서는 무대에 서기도 어려운데 왜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발레를 하면 행복하니까요.”
그 이후로 이들에게 무대를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마음에 성인반을 따로 개설하고 어른들을 모집했다. 모두 첫 질문은 “저 몸치인데 괜찮을까요?” “저 엄마가 몸이 안 예쁘다고 늘 그러셨는데 이런 몸도 발레 할 수 있나요?” 등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의 외모와 재능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짓는 문화로부터 상처받은 어린아이들이 늘 내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성인반에서 기초부터 하나씩 배우며 익히다보니 어느덧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두 들떠 큰 무대를 향한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난 늘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함께한 공연은 감동의 눈물 그 자체였다. 그간 모든 그들을 묶어놓았던 옛 쓴 뿌리를 뽑아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보며 다시 그 감동에 젖어들곤 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저도 발레 할 수 있나요?” 이제 난 웃으며 답한다. “그럼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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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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