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00만 명을 넘는 세계 주요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의 백신 접종률이 사실상 가장 높다고 한다. 중증 환자 비율은 물론 사망자 수도 주요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보건 분야는 물론 경제·군사 분야에서 세계 10위 이내고, K팝을 필두로 영화·드라마 등 문화 영역에서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시적 유행이라 생각했던 국내 여론과 달리 더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 외신의 평가다.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경제화를 위해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였고, 외국으로 무수한 유학생을 내보냈으며, 서구나 일본의 연구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충분한 고려 없이 외국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국민의 반감은 적었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 많이 사용된 용어 중 하나가 ‘의료붕괴’다. 유래를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의료 체계의 마비 또는 불안정’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굳이 ‘붕괴’라는 표현을 썼다. 또 다른 예로 돌파감염을 들 수 있다. ‘breakthrough infection’을 직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돌파’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그냥 ‘예방접종 후 감염’이라고 표현하면 뒤따르는 설명이 필요 없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고 하면 될 것을 ‘위드(with) 코로나’라고 써서 설명해야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breakthrough’나 ‘with’의 어감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삼겹살을 외국에 ‘(grilled) pork belly’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런 용어로는 삼겹살이 가지고 있는 뜻(돼지의 특정 부위에 대한 의미), 불판을 이용한 한국식 조리법, 채소와 반찬을 이용해 먹는 법, 가족이나 친구들이 소주를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문화 등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10월6일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26개의 한국어가 등재됐다. 앞으로도 계속 등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필자는 의대 본과 1학년 때 항상 낯선 용어의 바다 속에서 해부학은 라틴어나 영어 이름 외에 우리말 이름도 외워야 해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사회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 용어가 아닌 우리말 용어를 만들어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개념에 대한 이해의 속도와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초로 개발하거나 만들기 어려운 것은 기술이나 발명만이 아니다. 새로운 현상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거나 용어를 만드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일본식 표현인 노포보다는 ‘오래된 가게’ 또는 ‘고포’라고 불러야 한국인은 빨리 이해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어 더빙 및 자막인 ‘green light, red light’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미국인도 꽤 있었다고 한다.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때 웬만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새로운 현상에 대한 우리말 용어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가장 걸맞은 도구가 우리말이기 때문에 외국의 표현이나 용어에서 더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영어를 쓰면 유식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본어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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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권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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