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사라진 호랑이는 전설 속에 살아 있지만 60여 년 전 사라진 잉클라인 철도는 아는 이도 별로 없고 전설도 없다. 갑자기 잉클라인 철도가 떠올라 검색해 본즉 1963년도 황지선이 개통되며 없어졌다고 한다.
1958년 가을 봉화 중학교 졸업기념 수학여행을 삼척, 묵호로 갔다. 어느 날 새벽 봉화역을 떠난 검은 기차는 해발 300m의 봉화에서 약 80km를 고저가 400m나 차이 나는 오르막길을 달렸다. 기차는 속도도 못 내면서 칙칙폭폭 기관소리만 시끄럽게 냈다. 좁은 산골짜기를 뚫고 지나느라 괘엑 하는 기적 소리도 더 요란하게 들렸다. 뒤로 날려 보낸 연기에 검은 그을음이 각자 콧구멍에서 길게 내려 왔다.
춘양역에는 전국으로 실려 나갈 춘양목이 한강 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쌓여 있었다. “하늘도 세평이요/땅도 세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맥이다" 간결하고도 유명한 시가 탄생한 승부역부터 눈이 휙휙 돌듯이 파노라마였다. 절벽 따라 철교가 있으니 산골 촌놈도 놀랐는데 서울깍쟁이도 놀랐으리라.
그 즈음에 강릉에서 서울로 유학한 여자 둘을 35년 전 교회 관계로 버지니아 섄틸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고향이 봉화라 하니 산도 많고 골짜기라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봉화에는 호랑이도 많다고 응수하였다. 현재 러시아에서 옮겨온 한국 호랑이가 종 보전을 위해서 실제로 봉화 백두대간 호랑이 숲에 살고 있다.
아침 10시쯤 철암역에 닿으니 사람 사는 집도 살아 있는 나무도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주변 전체가 시커멓게 보였다. 높은 산 옆에 전국으로 실려 갈 석탄이 서울 남산옆 야외 음악당이 있는 산 둔턱을 방불케 쌓였다. 그 위에 촌놈이 처음 보는 불도저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해서 또한 구경거리였다.
조금 더 가 통리역에서 모든 승객들이 각자 보따리를 들고 내리는데 우리 학생들은 벌써 동해 바닷가에 왔나 싶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까 전부 내리라고 한다. 열차에서 내려 승객들이 가는 데로 따라 가는데 굵은 쇠밧줄을 감아 놓은 거대한 바퀴 두 개가 땅에 박혀 있다. 조금 더 가니 해발 680m 되는 태백산 준령에서 급전직하로 내려간 계곡에 천 미터쯤 돼 보이는 강철사다리 같은 철도 2개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이걸 보느라 멍한데 승객들은 이것도 안보고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빠른 걸음으로 강철사다리 옆 흙길로 뛰어 내려가 우리도 뛰어 내려갔다. 심포리 역에 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열차에 올라타고서 밑에서 위를 바라본즉 물건을 실은 화차 한대씩만 위에서 쇠밧줄이 당겨서 올라갔다. 위에서 물건을 실은 화차도 한대씩 쇠밧줄을 풀어 주는 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탄 열차는 오후가 돼서야 출발했는데 이건 또 뭐야? 해도 태백산 너머 기울어졌을 때 느리게 멀리 갔다가 다시 뒤로 왔다가 또 앞으로 가니 상고사리역과 하고사리역 격차가 높아 철길이 Z자 식이다.
제복 입은 차장이 와서 능숙한 웅변으로 “XX 열차 차장 XXX입니다. 이제부터 차표 검사가 있겠습니다. 차표를 보여 주시고 즐겁고 안전한 여행하시길 바랍니다"라며 얼마나 멋있게 웅변을 하던지 우리는 그를 본받아 웅변 연습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차표 검사를 안 하고 "기찻길이 잉클라인(경사 철길)으로 되어 쇠밧줄로 끌어 올려 내리고 갈지자로 된 철길은 우리나라에서 여기뿐입니다"라고 현장 교육도 해 주셨는데 얼마 안가서 동해 바다가 보였다. 우리 땅 끝이 여기구나 하며 땅이 좁은 것이 심히 안타까워 기마민족이 활거하던 고구려 땅이 몹시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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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은 / 스털링,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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