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다니감리교회, 한국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 기념비 참배

한국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 선교사의 남편 박여선 선생 묘소 및 기념비를 참배한 베다니한인연합감리교회 교인들. 오른쪽이 박대성 목사.
베다니한인연합감리교회(박대성 목사)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본명 김점동) 선교사 부부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난 23일 볼티모어 소재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에 있는 기념비 및 남편 박여선 선생의 묘소를 방문했다.
기념비는 2018년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 유학 온 아내 박에스더의 뒷바라지에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남편 박여선의 묘소에 세워졌다. 베다니감리교회는 4년째 매년 박여선 선생의 기일인 4월 28일 즈음에 묘소와 기념비를 참배하고 그들의 헌신과 섬김을 기리고 있다.
1895년 1월 감리교 여성 의료선교사로 ‘평양의 어머니’로 불렸던 로제타 셔우드 홀과 함께 미국에 도착한 박여선, 박에스더 부부. 박에스더는 의대 진학을 위해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어린이 병원에서 수간호사 보조로 활동하다 1896년 볼티모어 여자 의과 대학에 입학, 조선 최초의 여성으로 서양 의학을 공부했다. 박여선은 농장에서 일하며 자신을 희생했던 든든한 후원자로, 아내 박에스더의 공부를 뒷바라지 하다가 4년 후인 1900년 4월 28일 폐결핵으로 볼티모어에서 숨져 로레인 파크 공동묘지에 묻혔다. 남편을 이국땅에 묻은 박에스더는 같은 해 11월 미 감리회 여성 해외 선교부 파송으로 조선으로 귀국했다. 조선 여성들에게 희망과 빛을 선물했던 박에스더도 10년 후인 1910년 4월 13일 남편과 같은 폐결핵으로 한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는 한국에서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영혼까지 치유했던,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암흑기 조국과 여성사회를 위해 헌신한 빛난 별로 기억되고 있다.
박대성 목사는 “올해로 박여선 선생이 돌아가신 지 122년이 된다”며 “박에스더와 박여선 같은 분들의 헌신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고,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분들의 헌신적 삶의 이야기는 전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많은 한인 및 차세대들이 이들의 위대하고 희생적이었던 삶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리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리랑USA공동체(회장 장두석)는 내달 박 에스더 기념비를 참배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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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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