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민, <지난날의 용해공들>(부분), 1980, 조선화, 139x226cm,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전반적으로 북한의 미술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은 국가 체제를 옹호하고 인민의 생활을 미화하는 선전 선동, 소위 프로파간다 미술이다. 북한의 미술은 그러나 프로파간다 미술이라고만 치부하면서 낙인을 찍기엔 너무나 아까운 미학이 들어 있다. 특히 조선화라 부르는 북한의 동양화는 여러 면에서 개성이 강하다. 누구든 기존 동양화의 전통으로 조선화를 들여다 본다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춤 뒷걸음 칠만 한 기이한 면모를 다분히 지니고 있다.
내가 조선화에 꽂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회화 작가이며 미국의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현역 교수를 미치게 만든 조선화, 너는 도대체 누구냐. 세계미술사조에서 ‘사회주의 사실주의’라는 미술 흐름은 대충 1930년대부터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즈음의 기간에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국가의 미술을 일컫는 사조다. 폐쇄 속 북한을 들락거리며 북한의 미술을 체험하고 연구했기에 나는 세계미술사가 내린 이 흐름에 대한 판단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제가 될 지 몰라도 세계미술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반드시 받아내는 것이 나의 사명이기도 하다.
북한 미술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평양 미술계를 세 차례 다녀 온 후 조선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가 고민을 한 게 먼저였다. 왜냐하면 다른 학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조선화를 이미 연구했다면 굳이 내가 첨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나온 거의 모든 북한 미술 관련 서적을 구해서 독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어느 책에서도 내가 느꼈던 특별한 파장과 같은 그런 공명을 울려주는 내용은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 볼만 하구나. 그때부터 평양 미술 현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미술 창작기지인 평양의 만수대창작사를 드나들었다. 많은 조선화 화가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그들을 인터뷰 했다. 만수대창작사 뿐만 아니라 평양의 백호창작사, 중앙미술창작사, 삼지연창작사 등 여러 창작사의 관련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많은 질문을 했다. 이들은 놀랍게도 솔직했다. 체제에 대한 민감한 사안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한국 미술계의 인사들보다 오히려 감추려 드는 게 없어 보였다. 인터뷰와 대화를 통해 수집한 내용은 북한 미술의 야사에 해당하지만 모두가 주옥 같이 빛나는 정보들이었다.
국가미술전람회장를 찾았다. 조선미술박물관에서 오래 서성이며 전시된 작품을 가까이서 여러 차례 꽤뚫듯이 관찰했다. 작품 감상이 아닌 미학적 분석이 주목적이었다.
평양 여름의 무더위를 옥류관 냉면으로 달랬고 손끝 시린 겨울의 애국렬사릉 언덕에 올라, 누워 있는 예술가들의 혼을 만나기를 6년이나 했다. 나는 어느새 평양에서 조선화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 미국에서 오신 그 조선화, 문 선생!” 나를 보면 평양 미술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호텔 상점의 접대원들까지 나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돌아서서 “저런 조선화에 미친 종간나 새끼”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조선화에 미쳐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한 분야를 관통할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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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범강 /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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