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력난 속 기존 직원들과 형평성 눈치 ‘뜨거운 감자’
▶ 시행 2주 지났지만 대다수 한인 업체들 안 지켜…미 기업들도 실제보다 40~60% 낮게 제시 ‘편법’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인 박모씨는 “요즘 직원 뽑을 때 급여 수준을 공개해야 하는데 얼마를 적어 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새해부터 시행에 들어간 캘리포니아주의 급여투명화법에 따라 신규 인력 채용 시 급여 수준을 공시하는 것이 사업주의 입장에선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적게 적으면 구직자가 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최고치를 적으면 기존 직원들의 급여 인상 요구가 빗발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법을 지키기 위해 급여 범위를 공개하지만 마음은 마치 포커판에서 눈치 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 시 급여를 공개해 성별과 인종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고 여성 및 소수 인종이 노동 시장에서 더 나은 취업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로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발의돼 통과된 ‘급여투명화법’(SB1162)이 시행 초기부터 ‘삐걱’되고 있는 모양새다.
신규 직원과 기존 직원 사이에 임금 격차가 노출될 것을 우려한 한인 업주들이 신규 인력 채용 시 급여 공시를 꺼리는 분위기다. 설사 공시하더라도 공개 급여를 실제보다 축소하는 ‘임금 디플레이션’이나 급여 범위를 두리뭉실하게 공시하는 등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입법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17일 한인 업계에 따르면 직원 수가 15명 이상 업체를 대상으로 급여투명화법이 시행된 지 2주가 넘었지만 신규 직원 채용 공고 시 급여 공시를 하고 있는 한인 업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한인 업체들이 자주 이용하는 구인 웹사이트 잡코리아USA(대표 브랜든 이)에 구인 광고를 낸 한인 업체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급여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투명화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논의 후 급여 결정’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어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브랜든 이 잡코리아USA 대표는 “법 시행 초기라는 점에서 한인 업체들이 급여 공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구인 공지를 의뢰하는 업체들에게 급여투명화법에 대한 안내문을 이메일로 공유하면서 법 준수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 업체들이 급여 공시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그에 따른 파장이 너무 크다 보니 공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신규 채용자에 대한 급여 범위가 공개되면 당연히 같은 직위에 있는 기존 직원들의 급여와 비교가 가능해진다는 점이 한인 업주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식품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인 업주는 “인력난이지만 기존 직원들과 형평성을 고려해 마냥 높은 수준의 급여를 공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차라리 급여 수준을 낮게 공시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기존 직원들과 마찰의 소지도 없앨 수 있는 안전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사회 업체들도 급여투명화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업들이 신규 채용 공고시 급여 수준을 실제 급여 수준에 비해 40~60% 정도 낮은 급여를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설사 급여를 공개해도 최저와 최고 급여 사이의 차이가 10만 달러에 달해 정확한 급여 수준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채용공고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급여를 20만5,000~28만1,000달러로 제시했고, 법무실장의 경우 19만~25만6,000달러로 공시했다. 애플은 아이폰 운영체제(iOS)를 다루는 엔지니어 매니저 채용 공고에서 22만9,000~37만8,000달러의 급여를 제시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캘리포니아 노동 당국이 급여투명화법 위반 업체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주 노동청은 최근 급여투명화법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법 시행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는게 한인 법조계의 평가다. 김해원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가주 노동청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주정부에서 이 법의 시행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벌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새 법에 따라 채용 광고를 내기 전에 급여 공시 내용을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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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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