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에 버금갈 ‘수박 칠적(七賊) 처단’이라는 포스터가 최근에 SNS를 통해 등장하더니 그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달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내 이탈표에 대해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이 공천 살생부 명단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일부 친명계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민주당은 큰 내홍을 겪고 있다.
수박은 무더위를 식혀주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여름철의 대표적인 과일일 뿐이다. 이런 수박이 정치권에서 비아냥의 언어로 제일 먼저 사용된 곳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6.25 전쟁 후 숨어있는 공산주의자를 겉은 녹색이면서 속은 빨간 수박에 빗대면서부터다.
이렇듯 부정적인 의미를 더불어 지닌 ‘수박’이라는 용어를 민주당이 스스로 전유물처럼 사용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년에 민주당이 6.1 지방선거 참패 이후 극심한 계파간의 갈등이 이어졌을 때, 이재명 책임론을 언급한 이원욱 의원에 대해 강성 지지자들이 한동안 사라졌던 ‘수박’이란 단어를 다시 꺼내들어 그를 단죄하려 들자 이 의원이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맛있네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 때부터 ‘수박’은 친명계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친문계 정치인을 비난할 때 쓰는 은어로 자리매김했다.
1년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은 도로 ‘수박’ 풍년을 맞았다. 넝쿨째 들어오다 못해 수박에 깔려 죽을 판이 되었다. 한여름 바닷가에서 캠프파이어 주변을 친구들과 둘러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며 깨먹던 수박의 추억이 백주대낮 아스팔트 거리에서 혐오에 가득 찬 발길질에 짓밟히고 말았다. 뒤늦게 이대표가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분열과 반목의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표리부동, 내로남불의 이중성이 어찌 민주당 내에만 있는 현상이겠는가? 국화와 칼이 현란하게 난무하는 국제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곳곳에도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은 만연해있다. 아마도 올 여름 수박은 엄청 달고 시원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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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김 / 재미부동산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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