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은 퍽 다채로웠다. 일생에 몇 번 안 겪을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생사 화복의 소용돌이속에서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여과없이 몰아쳤다. 팬데믹 와중에도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고, 그 경사를 앞두고 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결혼식, 뇌수술, 입원생활, 퇴원 및 미국 복귀, 수술 후유증으로 힘겨웠던 나날들… 돌이켜 보니,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과정을 숨가쁘게 헤쳐 나왔고 다시 내자리에 서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해 봄부터 시작된 왼쪽 다리의 이상 징후… 미국 병원에서 적절한 의료책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다리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명확 해졌고, 운동화 외에 다른 신발은 신을 수 없었다. 지하도나 육교 앞에서 암벽등반을 하듯 마음을 다 잡아야 하는 상황… 이렇듯 전에 없던 증상이 몸에 더해졌는데, 병원에선 특별한 소견을 내놓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당장 못 걷는 것도 아니고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의학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면 견딜만하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다. 증상이 분명한데 병의 실체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 의사분을 통해 뇌 MRI를 찍어 보기로 했다. 그 검사의 결과가 몰고올 거대한 폭풍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MRI를 찍는 날 아침, 조용히 기도하는데 한 생각이 날 사로잡았다. 등식의 기본 성질, 양변의 균형이다. 한 변에 더해진 것이 있다면 다른 변에도 더해진 것이 있다. 현재 기울어져 있는 등식에 균형을 맞추는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자. 돌이켜 보니, 잠시 후에 받을 충격을 그때 먼저 대비했던 거 같다. MRI 결과 모니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인 의사 선생님…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 등을 연신 쓸어 내리는 남편… 대학 병원 예약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연락을 취하는 사무장님… 순식간에 내 주변에 폭풍이 몰아쳤지만, 놀랍게도 내마음은 태풍의 핵속으로 들어간 듯 고요하고 담담했다.
드디어 등식이 성립되고 양변에 균형이 맞는다. 마침내 드러난 병의 실체 앞에서 내 마음의 기류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문제가 완성되었으니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잘 풀어낼 자신은 없지만 이미 답 앞에 서있는 듯 마음이 평안하니 신기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