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그치자 햇살이 더 환하다
씀바귀 꽃잎 위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
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
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
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
초록 치맛자락에
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
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
잠시 꽃술이 떨렸던가
나 태어나기 전부터
수억 겁 싱싱한 사랑으로 살아왔을
생명들의 아름다운 수작
나는 오늘
그 햇살 그물에 걸려
황홀하게 까무러치는 세상 하나 본다
‘아름다운 수작’ 배한봉
봄은 수작의 계절이다. 무당벌레뿐이겠는가. 겨울잠에서 깨어난 꿀벌들이 봄꽃마다 수작을 건다. 아니, 꽃들이 수작을 건다. 꽃잎은 식물의 광고판이다. 네온처럼 반짝이는 허니 가이드가 곤충을 잡아끈다. 매화의 속눈썹과 복사꽃의 분홍 뺨을 보라. 아무리 바쁜 꿀벌도 안 들르고는 못 간다. 꿀술 한 모금 마시고 꽃가루 택배 받아서 다음 꽃으로 간다.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은 수작으로 꽃을 준비했다. 수작은 관계의 시작이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다. 꽃의 수작이 우리를 살게 한다. 허튼 수작이라도 봄에는 용서할 만하다. 반칠환 [시인]
<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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