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백화점이나 마트를 갔을 때, 흡족한 쇼핑을 하고 나오면 콧노래처럼 하는 말 “돈 쓰는 재미가 어찌 이리 즐거울꼬” 오늘이 그런 날이다. 차의 뒷 트렁크를 열고 마트에서 방금 사온 갖가지 음식 재료들로 가득 찬 장 바구니를 낑낑대며 집안으로 들어선다. 장 바구니 수를 줄여야지 하면서도 매번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잘 길들여진 나의 ‘큰 손’ 탓이리라.
한국 식료품 가게가 아닌 동네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러 온 이곳 미국인 주부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장 바구니는 한결같이 가볍다. 더구나 노인들의 경우에는 빵과 몇가지 채소와 과일, 그 중에서도 바나나는 한 두 송이를 뚝 잘라 담는 건 다반사이고, 요구르트와 음료수등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인스탄트 캔 종류들로 장 바구니를 채운다. 아마도 그들은 외식하는 날이 많아서 일까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의 크기는 우리집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장난감 같은 작은 쓰레기통만 보아도 그렇다.
마트에서 사온 대부분의 채소들은 생물이라 곧 바로 손질해서 안전하게 보관해야하는 것은, 며칠만 지나고 나면 곧 바로 쓰레기로 버려지기 때문이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나로서는 부랴부랴 채소는 다듬고, 삶을 것들과 볶을 것들을 최대한 빨리 분리 조리하여 냉장고에 넣고, 생선은 집으로 가져온 후에 약간 언 상태로 잘라 다듬어 두면 위생적이고 나중에 요리하기에도 간편할 뿐더러 가격도 저렴해서 눈에 뜨이면 주저없이 구입한다. 힘 들긴 하지만 채소와 생선은 이렇게 해서 보관해 두면 한 동안 반찬 걱정이 없으니 식탁을 책임 진 나의 생활 묘책이기도 하다.
언제나 버릇처럼 남편은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갈 때는 몇 번을 주저하지만 먹 거리를 사러 마트에 가자면 두말없이 따라 나서곤 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고 보면, 그래서일까, 어딜 가든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말에는 내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다.
언젠가 둘이서 고즈넉히 식탁 앞에 앉아 떠 올렸던 노년의 밥상을 시 한수에 담아 보았다:
밥
쌀, 보리 씻어
밥솥에 안쳐 놓았더니
보글 보글 끓어 오른다
자지러지진 추의 춤 사위
한 바탕 돌다 잦아지면
사방에 번지는 구수한 밥 내음
세상에 이보다 좋은
냄새 있었던가
호젓한 밥상 마주하고 앉아
늙어서는 밥심으로 산다고
어서 임자 많이 먹으라고
노부부가 주거니 받거니
갓 지은 밥 그릇 안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
윤영순 메리옷쯔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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