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이거 없는 사람들 꽤나 있다.
오늘 신문을 보니 후배의 부인상(喪配) 부고가 나왔다. 적어도 금혼(金婚)은 지났으리라.
처음엔 사랑이요, 중반에 친구로, 후반엔 동반자로서 사랑은 젊었을 적보다야 많이 희석이 되었겠지만 그야말로 의리 하나만으로 함께 마지막 남은 생을 마무리하는 게 아닐까.
모든 일에 어디 언제나 다 동의할 수만 있었을까? 때론 의견 불일치, 아니 많은 경우에 의견 상충이 오히려 자연스런 인간관계, 부부관계가 아닐는지.
하여튼 어쨌거나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고, 헌신하며 50여년을 살아왔다면 무지무지한 책임감 또한 있지 않고서야 참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어느 날 친구들 모임에 6.25사변 때 피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는데 이러저러, 어느 곳(지방)으로 어떻게들 고생하며 임시 정착 했었는가였다. 한 친구 왈, “말도 말라, 우리 아버지란 분은 작은댁을 얻어 본가 식솔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방기하다시피 내버려두고 자신들만 도망쳐 버렸다”고 속으론 분노가 용광로 끓듯 했겠으나 워낙에 점잖은 친구라 담담하게 얘기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어디 인간이라고 할 수가, 책임감이란 눈꼽만큼도 없다.
어디 이런 부류들만이겠는가. 젊은 새댁과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사상이 뭔지, 이념이 뭔지, 좌우사상에 정신팔고 월북한 자들, 또 어느 사람은 정신질환이 원인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자진하여 가족들이 일생을 고생, 고생하며 살게 만드니 책임감 없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가족 단위를 비롯해 온갖 조직의, 더 나아가선 한 국가의 수장(首長)들의 책임이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韓江)씨의 말을 빌리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아까운 생명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무슨 기자회견이며 자축의 변이 필요하겠느냐.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생명들을 파리 목숨처럼 희생시키는 책임감 없는 지도자들의 책임감 운운 여부를 떠나 범죄자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한편 가족들 생계를 위해 허리 휘어지도록 휴가는 커녕 밤낮없이 일 년 열두 달 고된 노동을 하며 책임을 이행하는 가장들 또한 있음에 우리들은 그래도 안도(安堵)한다.
아마도 책임감의 극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원죄 없으시면서도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실까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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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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