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부두에 은빛 강물처럼 생선을 쏟아내면, 통조림 공장은 비명처럼 경적을 울려댔다. 몬터레이의 캐너리 로우는 1902년 한 일본인이 세운 공장에서 시작되어, 1930~40년대 전쟁 특수로 급성장했다. 태평양 인접이라는 이점 덕분에 군수물자 보급용 통조림 생산이 활발했지만, 1960년대 들어 남획으로 공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이곳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 ≪통조림 공장 골목≫과 ≪달콤한 목요일≫의 배경이다. 오션뷰 애비뉴였던 거리는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캐너리 로우로 이름이 바뀌었다. 붉은 벽돌 공장 앞 스타인벡 플라자에는 그의 흉상과 소설 서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공원 중앙에는 높이 15피트, 폭 17피트의 바위와 청동 조각으로 만든 캐너리 로우 기념비가 서 있다. 바위 맨 위에는 젊은 시절 스타인벡이 길 건너편 공장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며, 주위에는 여덟 명의 인물 청동상이 함께 있다. 그중 해양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리케츠는 몬터레이 베이의 해양 생물과 해초를 연구하며 스타인벡에게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두 사람은 함께 해양 생물 채집을 다니며 진주를 채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진주≫를 썼다.
스타인벡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로, 근로자와 빈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공원 기념비에는 도라 플러드, 동양계 노동자, 지역 기업가, 창녀 등 캐너리 로우의 다양한 인물상이 함께 있다.
실제 소설의 무대가 된 장소도 남아 있다. 리 청의 식료품점은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스타인벡이 그를 선과 악의 중간에 놓았던 인물로 묘사했다. 해양 생물학 연구소는 ‘닥’의 일터였고, ‘라 아이다 카페’는 맥 패거리들이 술을 모으던 장소다.
맥 패거리 다섯 명은 사고를 일으키면서도 거리의 평화를 지키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닥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지만, 파티는 엉망이 되고 연구소도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나 다툼 뒤에는 다시 웃음이 돌아오고, 캐너리 로우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들의 소동은 이웃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오늘날 캐너리 로우는 상점과 식당, 정어리 그림 간판들이 늘어선 관광지로 변했다. 바닥에는 손바닥만 한 명패들이 박혀 있고, 바랜 벽화 속 어부들은 여전히 그물을 들어 올린다. 비릿한 냄새와 낡은 골목에는 과거 삶의 흔적이 스며 있다.
수많은 세월과 변화 속에서도 이곳은 변함없이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억을 품고 있다. 때로는 과거의 영광과 고단함이 어우러져 조용한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복잡한 그물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존 스타인벡은 이곳에서 부서진 삶과 따뜻한 공동체, 꿈과 유머를 건져 올려 소설로 승화시켰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보듬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골목 어딘가에서 숨 쉬는 듯하다. 문득 생각한다. 내 삶의 그물에는 어떤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있을까. 천천히 그 거리를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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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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