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모양을 한 이탈리아 본토 앞굽에서 3㎞ 남짓 떨어진 시칠리아섬과 본토 사이의 메시나해협을 잇는 것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인들의 오랜 꿈이었다. 기원전 3세기 제1차 포에니전쟁 당시 로마인들이 배와 통을 연결한 다리를 지어 카르타고에서 노획한 코끼리 100여 마리를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옮겼다는 기록도 있다. 그 이후로 시칠리아와 본토를 연결하려는 구상이 심심찮게 제기됐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등도 현실적 벽에 부딪쳐 그 꿈을 접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구체화됐던 계획이 2013년 유럽 재정 악화로 무산되면서 메시나해협을 잇는 일은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미완성 프로젝트로 남아 있다.
■7일 조르자 멜로니 정부가 2032년까지 135억 유로(약 21조 8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와 시칠리아섬을 잇는 현수교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길이 3666m의 다리 건설이 실현되면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된다. 재정과 안전, 환경 문제 등 여러모로 논란이 큰 메시나해협 대교 건설에 힘을 실은 것은 뜻밖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의 압박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국방 지출 목표가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로 높아지자 멜로니 정부는 메시나 대교 건설을 5% 목표 달성을 위한 안보 투자로 분류하는 ‘꼼수’를 생각해냈다. 올 4월 멜로니 정부는 “이 다리는 민간 용도 외에 나토 동맹군이 북유럽에서 지중해로 이동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실현 여부는 미지수지만 만성 예산 부족으로 국방비 지출이 GDP의 1.49%에 불과한 이탈리아로서는 나토 목표와 정치적 숙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기회를 맞은 셈이다.
■국방 지출을 높이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국가 안보와 연결 짓는 국가는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영국은 히드로공항 확장 예산을 국방 인프라 투자로 재분류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의 압박 속에 안보 투자에도 ‘묘수’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신경립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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