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게까지 자고 싶은데/ 학교 가기 귀찮다.// 집을 나와/ 학교 가는 길
자동차가 부릉부릉 달린다./ 새도 지지배배 달린다./ 다리 밑에 강물 소리도 달린다.…”
어느 초등학생이 쓴 ‘학교 가는 길’이라는 동시의 앞부분이다. 더 자고 싶은 데 학교 갈 시간이라서 아이는 투덜대며 일어난다. 하지만 달리는 자동차 새 강물소리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학교로 달려간다. 파릇파릇 싱그러운 모습 -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동요 ‘함께 걸어 좋은 길’ 역시 학교 가는 길이 배경이다.
“…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손잡고 가는 길/ 너랑 함께 걸어서 너무 너무 좋은 길
문구점을 지나고 장난감집 지나서/ 학교 가는 길 너랑 함께 걸어 좋은 길“
어린이들이 학교 가는 길은 이렇게 정답고 즐거워야 하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개학을 맞아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마음, 아이를 학교로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 아이들을 맞는 교사들의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근심 걱정 두려움이 서려있다.
8월 중순 이후 전국의 학교들이 개학을 했지만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 기류가 심상치 않다. LA, 시카고 등 이민가정 아동이 다수 재학하는 교육구의 분위기는 특히 뒤숭숭하다. 이민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추방정책 때문이다. 합법적 체류신분을 갖지 못한 이민자들은 물론 합법적 체류자라도 음주운전 등 위법전력이 있는 이민자들은 모조리 적발해 추방하겠다는 기세이니 이민사회는 불안하다.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이들이 고국방문을 꺼리는 실정이다. 한국 방문 후 미국으로 들어올 때 어떤 꼬투리를 잡혀서 추방될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는 오랜 기간 이민단속 안전지대였다. ICE가 학교 교회 병원 등 예민한 구역에서는 불시 이민단속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 직후 이를 없애버리면서 이민단속 요원들은 학교든 병원이든 어디든 거칠 것이 없게 되었다.
실제로 최근 샌디에고 부근 출라비스타 지역에서는 한인 여성이 아이들을 등교시키다 이민 단속 요원들에 체포되었다. 여성은 비자 만료 후 계속 체류한 것이 문제가 되어 추방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어린 자녀들이 엄마가 체포되는 것을 눈앞에서 고스란히 보았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
이런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이민가정 아동 보호에 나섰다. 전국 공립학교 시스템 중 두 번째로 큰 LA 교육구는 학생들의 이민신분과 무관하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겠다며 교육구 경찰이 지역 법집행관과 손잡고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다. LA 93가 초등학교 같은 경우는 ICE 접근을 막기 위해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전국 3위 규모인 시카고 공립학교 연합은 연방판사가 서명한 영장 없이는 이민세관 단속요원들이나 연방 법집행관들이 학교에 들어올 수 없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 많은 이민자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두려워 온라인 학습 기회를 찾고 있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조잘대며 학교 가는 길은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 길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채워진다면 그 기억은 평생의 상처가 될 것이다. 학령기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교육하고 지원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이 땅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런 지원을 못 받고 자란다면, 언젠가는 사회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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