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에도 10여 년간 고조선 단군신화 연구에 매진한 이돈성 박사의 학문적 기여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 필자는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단순한 사료 검토를 넘어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진실을 탐구하려는 치열한 노력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의학자로서 은퇴 후 학문을 삶의 중심에 두고 끈질기게 연구하는 자세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켰다.
고조선은 한국인의 뿌리이자 동시에 역사적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으나, 그 실체는 늘 모호했다. 단군 신화 속 전설로만 남거나, 중국 사서의 부차적 기록 속에서 주변화된 존재로 취급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왔고, 고조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모솔 이돈성의 『고조선 단군조선 시말고』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 사학계가 중국 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역사를 읽을 때 “상식적 판단”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록의 문자에만 얽매이지 말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정치적·문화적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사서의 경우 춘추필법적 은폐와 왜곡이 많기에, 이를 전제로 “행간 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방법론의 핵심이다.
모솔의 접근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역사 인문학적 접근: 역사를 인문·사회·고고학의 모체로 정의하고, 왜곡과 누락을 ‘병증’에 비유하며 원인을 추적해 역사의 맥락을 복원하려 했다.
2. 언어학적 접근: 고대 기록 속 문자에 남은 음운을 해석의 열쇠로 삼아, 중국 중심의 해석을 넘어 고조선의 흔적을 새롭게 읽어내려 했다. 문자학과 어원학을 통한 독창적 시도다.
3. 불교 전래 논증: “意在斯焉, 桓因謂帝釋. 弓裔 시조 赫居世”라는 기록을 근거로, 전국시대 금미달 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주장했다. 나아가 예맥족의 활동 무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하여, 해상 교역과 불교 전파를 연계해 해석하였다.
편집후기에는 연구 여정이 담겨 있다. 윤내현, 이기백 같은 한국 학자들뿐 아니라 일본·미국 학계, 그리고 해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의 주장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학술 발표와 방대한 각주, 지명 비정을 통해 논의를 공론화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책은 총 8부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2: 단군 신화, 홍산문화, 서주·동이·예맥의 어원을 새롭게 해석하며 황하 문명과 고조선의 연결을 탐색.
·Part 3-4: 철기문화 도입과 춘추전국시대 속 고조선의 위상을 다루며, 고죽국·준왕 사례로 고조선의 주체성을 강조.
·Part 5-6: 마지막 단군의 소재지를 금미달로 비정하고 신라·가야와의 연계를 논증. 북부여와 삼한의 기원을 어원학과 사마천 기록으로 재구성.
·Part 7-8: 위만조선과 공손씨, 발기왕자 사례를 다시 읽으며 일본 고대국가 성립을 고구려 유민 이주와 연결. 신라 향가·처용가·화랑 문화를 예맥족 이동과 불교 전래의 맥락에서 해석.
이 책의 학문적 의의는 분명하다.
1. 중국·일본 사서 중심의 고대사 해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재조명했다.
2. 고조선을 동아시아의 주변이 아니라 세계사적 무대의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3. 신화를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의 그늘로 끌어올리려는 시도 자체가 학문적 도전이었다.
『고조선 단군조선 시말고』는 단순한 고대사 저작을 넘어, 기존 담론의 틀을 흔들고 신화와 역사를 잇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대담한 상상력과 독창적 해석은 고조선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록 비판과 논쟁은 불가피하겠지만, 바로 그 논쟁 속에서 한국 고대사는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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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 시인, 수필가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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