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저울로 금화와 보석의 무게를 다는 일에 여념이 없다. 복장으로 보아 앤트워프의 부유한 중산층이다. 그의 아내가 옆에 앉아 있다. 그녀 앞에 성모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기도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잠시 전까지 기도와 명상 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방금 전 남편이 세는 금화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보화와 재물이 그녀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 일의 이름은 ‘미혹의 작은 시작’이다. 하지만 이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영혼까지 집어삼킬지도 모를 작지 만은 않은 시작이다. 금화를 세는 남편보다 금화를 더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이제껏 그녀의 영혼을 인도했던 기도와 명상이 재물과 탐욕으로 대체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작은 미혹이 장차 지불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1885년 작 ‘맘몬’이 잘 요약한다. 황금은 타락한 신 맘몬이 즐겨 입는 외투다. 그가 쓰고 있는 당나귀 귀가 달린 왕관은 부를 숭배하는 것의 결과론적인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이 신은 우둔해 보이지만 그 외양조차 쉽게 경계를 풀도록 만드는 탁월한 전략의 일환이다. 그의 무릎 위에는 그가 사람을 미혹할 때 사용하는 효과 만점인 금화가 잔뜩 든 불룩한 주머니가 있다. 그는 황금만능주의라는 독가스를 살포한다. 해골로 장식된 왕좌는 이 가스에 중독된 사람들에 예외 없이 일어날 일의 결론, 곧 죽음이다. 맘몬의 발치에 널브러진 채 생을 마감한 남녀를 보라. 심지어 벌거벗은 채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상태를 의미한다.
캉탱 마시가 부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초기 르네상스 시기 앤트워프의 상황을 그렸다면 와츠는 인격이 재물에 무릎 꿇고, 교회마저 맘몬 숭배로 돌아서는 19세기 산업혁명기의 타락상을 표현했다. 맘몬의 신상이 바벨탑 만큼이나 높이 솟은 21세기, 누군가가 이 시대의 풍속화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우리의 심장과 영혼을 요구하는 거짓 신 맘몬 숭배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심상용 /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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