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주거가 특권이 되어버린 것일까. LA의 주택시장은 심각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3개월간 건설 중인 아파트 물량은 1만9,000채에도 미치지 못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불과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한때 7만 채 이상이 공급되던 1950년대와 비교하면, 오늘날 LA는 주택 공급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통계는 충격을 던진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고율의 세금, 끊임없는 규제, 관세로 치솟은 건축비, 이민 단속으로 인한 인력난까지, 악재가 겹겹이 쌓이며 대형 투자자들을 몰아냈다. 웨스트사이드에서 고급 아파트 단지를 완공한 한 개발업자는 “투자자가 없는 개발업자는 ‘옷을 벗은 왕’과 같다”고 토로했다. 한때 800세대 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또 다른 건축업자 역시 “2년 넘게 부지를 매입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개발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철수는 곧 신규 공급의 씨가 마른다는 뜻이다.
문제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2018년 11월 발생한 말리부 대형 산불(울시 화재)과 올해 1월 발생한 LA 산불 피해 지역조차 아직 재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 존재하던 집조차 복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신규 아파트 건설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다.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행정과 규제의 장벽은 재건을 가로막으며 주거 불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통계는 냉혹하다. 지난 6년간 LA에서 새로 지어진 15만2,000채 가운데 저소득층이 감당 가능한 주택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반면 새 아파트 임대료는 월 4,000~5,000달러로 치솟아, 세입자가 연간 최소 12만 달러는 벌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사실상 중산층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변질됐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다.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공급되는 주택은 고가 아파트에 집중돼 있어 수요와 맞닿지 않는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임대료 상승과 서민 주거난은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LA 시의회는 최근 다세대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32.35달러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의료보험 공제 혜택까지 포함될 경우 건설업체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지만, 건설업체와 투자자에게는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한다. 철강·구리 가격 급등, 이민 단속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까지 겹치면, 결국 공급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규제 강화가 서민 주거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에서는 공급 부족과 임대료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결국 서민들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외곽으로 밀려나며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교통난을 가중시키고,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까지 높인다. 주거 불안이 교통 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주택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삶 전체를 흔드는 사회적 위험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는 지역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답은 명확하다. 규제 완화다. 규제를 완화하고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 한 투자자는 돌아오지 않고 공급 부족은 심화될 것이다. 규제라는 이름으로 선의만 강조하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아프게 한다. 주거 위기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급의 회복’이며, 그 출발점은 규제 완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실질적 공급 확대에 집중할 때 LA는 다시 주거 안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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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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