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일교차가 심해지기 시작한 지난주부터 몸살(?)같은 감기에 시달렸다. 아침에 내 소식을 들었는지 큰아들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엄마, 이번 주말에 Zoom으로 뵐 수 있을까요?”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는 가족미팅을 말한다. 모두 분주한 일상에서 따로 자주 만나기는 어려운 현실이기에 Zoom으로 보면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상의하고 있다. 초가을 감기로 2주일을 집에서 쉬면서 베란다의 내 다정한 화분들을 돌보며 지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며, 베란다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었다. 밤새 연두색 작은 잎이 숨을 내밀고, 그 밑에 누렇게 메마른 낙엽이 매달려있다. 문득 스킨답서스의 잎사귀와 내 삶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 서로의 교감은 우리 내면의 마른 땅에 다시금 생명감을 일깨워 준다.
“산이 날 에워싸고 / 씨나 뿌리고 살아라한다. / 밭이나 갈고 살아라한다. /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 아들 낳고 딸을 낳고 / 흙담 안팍에 호박심고 / 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 / 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 / 산이 날 에워싸고 /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 구름처럼 살아라한다 / 바람처럼 살아라한다”......박목월시인의 “산이 날 에워싸고”
가을은 늘 시간의 경계에 서있는 계절이다. 봄의 약속도, 여름의 열정도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게 하는 가을, 계절이 깊어지고 낙엽이 지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내며 다음 생을 준비하는 일이다. 지는 잎에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과 묵묵히 견뎌온 생의 역사가 그늘 진 그림자로 얼룩져있다. 바람이 흔들리고 나뭇잎은 저마다의 빛깔로 변해가면, 침묵 속에서 자연은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큰 화분에 깊숙이 뿌리내려 살고 있는 스킨답서스의 작은 잎이 “삶이란 이파리의 넓이만이 아니고 풍성한 넝쿨의 길이라고 엉성하게 소리친다.” 그들의 디아스포라 삶과 비장한 생존의 심지가 마치 척박했던 이민자들의 삶처럼 느껴져 가슴에 파고든다.
스위스 엥가딘 지역, 실스 마리아 마을에는 ‘니체 기념석’이 세워져있다. 이 기념석에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구절이 새겨져있으며,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기도 한다. 니체는1881년부터 1888년까지 여름마다 이곳 실스 마리아 마을에 머물렀다.
그는 “여기서 나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으며, 어느 날 걷던 중 ‘영원회귀’의 사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신의 침묵을 듣다. 인간의 연약함이 자연과 마주할 때, 더 큰 존재와의 연결된 듯한 감각을 얻게 된다. 자연은 신비의 거울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더 큰 존재와 그리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내 작은 베란다에서 자연의 심오한 지혜가 새겨진 나뭇잎들을 들여다본다. 생명의 근원과 귀착에 대한 불안한 주름을 펴고, 마음을 맑게 씻고 오늘을 감사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자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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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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