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월 워싱턴무량사 회주 동국대 불교학과 전 교수
어느덧 한국 달력은 소설 절기가 지나고, 동안거 결제가 다가옴을 일러준다. 중국과 한국 등지의 동북아시아에서는 이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전통 선원에서는 겨울 안거를 시작한다.
위도가 낮은 남아시아의 인도에서는 여름에 무척 덥고 비가 많이 내려서, 교통이 불편했던 2600년 전 옛날에는 수행자들이 걸어서 나다니기를 삼가고, 숲속에 머물러 참선 명상으로 안거 결제 정진에 집중했다고 알려져 온다. 그 안거 수행 전통이 북방으로 전해지면서, 춥고 눈 내리는 겨울에도 비슷하게 행해졌고, 한국의 산중사찰 선원에서는 그 풍습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데, 음력 시월 보름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 겨울 수행정진 가풍을 이어오고 있다.
어제 미국 최대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았다. 원래 400여 년 전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온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1620년 이민자 102명이 처음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와서, 그해 겨울에 반 이상 추위와 굶주림에 사망하고, 다음 해 주위의 토착 주민 왐파노아그 인디언의 도움으로 농사를 지어 그해 가을에 첫 수확 곡물들을 기리며, 이웃 주민들을 초청하여 감사하고 자축하는 잔치를 벌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올해에도 최소 50마일 (2백리) 이상 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8천만 명을 넘으리라 예상된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의 추석 명절처럼,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회포를 풀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 인지상정 즉, 인류 보편적 정서임을 느낀다.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 선원을 방문해보면, 대부분 법당이나 선방의 벽화 가운데, 이른바 “구법단비(求法斷臂)” 즉, ‘법(法 진리)을 구하기 위하여 팔을 끊는다’는 전설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험한 바위굴 가운데 한 노승이 앉아 있는 앞에, 눈이 쌓인 뜰에서 한 젊은이가 칼로 자기 팔을 잘라서 바치는 정황을 보이는데, 눈 덮인 땅으로부터 솟아난 파초가 잎으로서 잘린 팔을 받아 노승에게 올리는 신비한 장면이다.
이는 중국 선종의 초조로 알려진 보리달마(줄여서 달마) 대사가, 인도로부터 온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인 혜가를 만나 법을 전하게 된 사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마 선사는, 석가모니불로부터 심인(心印) 즉, 마음의 법이 처음 가섭존자에게 전해진 뒤(以心傳心)로 이어진 인도의 제28대가 되는 조사(祖師)지만 중국에서는 제1조로 치부되어, 혜가 선사는 중국 제2조로 불려온다.
한국 조계종의 종조 도의국사는 중국의 제6조 혜능선사의 제4대가 되므로, 달마로부터는 10대조사라 할 수 있으며, 선종의 심법이 한국에 전해져서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혜가 조사와 같이 법을 구하고 얻기 위하여 지극한 정성과 자발적 헌신을 보이는 모습이 현창됨은 가상하다.
종교마다 각지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수도자와 성직자들 나름대로의 구도적 헌신과 희생의 열정 및 목적 성취에 대한 미담이 전해져 온다.
불교에서는 “위법망구(爲法忘軀)” 즉 법을 위하여 몸을 잊는다는 격언이 유통된다. 깨침의 법을 구하기 위하여, 또는 사악한 공격으로부터 정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힘을 마다하지않음도 비슷한 종교적 열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어떤 형상에 얽매이기보다, 그 전하고자 하는 뜻과 정신을 깨닫고 주체화하려는 노력이 귀하다고 할 수 있는 데, 산승의 자작시조 한 수를 올리며, 독자님들의 안거 정진에 보람 크시기를 바라며 맺는다.
<참구(參句)>
서쪽서 오신 조사(祖師) 품은 뜻 어떠한지?
여쭈니 메아리는, “뜰 앞에 잣나무라.”
말머리(話頭) 나온 곳 찾아 온 마음을 바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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