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천 가지의 식단이 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론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중의 어느 것도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아니다. 좋은 식단이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그 시대에 맞는 모범 답안지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릴 때와 꽉 막힌 시내를 주행할 때 필요한 연비 운전법이 다르듯, 우리 몸도 현재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느냐에 따라 연료 공급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것과 같다.
육체노동과 운동선수: 탄수화물은 여전히 최고의 연료다
하루 종일 몸을 쓰는 건설 현장 노동자나, 격렬한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최근 유행하는 ‘저탄수화물’ 식단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함을 넘어 위험한 일이다. 국제스포츠영양학회(ISSN)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고강도 운동 시 근육은 저장된 글리코겐(Glycogen)을 주 연료로 사용한다. 이를 빠르게 보충해주지 않으면 수행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근육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적으로도 육체 활동은 기(氣)와 혈(血)을 폭발적으로 소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때는 소화가 빠르고 즉각적인 에너지를 내는 곡기(곡물 탄수화물)와 근육을 구성하는 육류 단백질이 풍부한 ‘전통적 고열량 식단’이 정답이다. 이들에게 밥심은 비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과학이 된다.
사무직 회사원: 잉여 에너지를 줄이는 ‘저탄고지’의 지혜
반면, 하루 중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운동이라곤 출퇴근 걷기가 전부인 사무직 종사자는 상황이 정반대다. 육체적 소모는 적은데 고탄수화물 식사를 지속하면, 쓰이지 못한 포도당은 인슐린을 자극해 뱃살(중성지방)로 직행한다.
이런 생활 패턴을 가진 이들에게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양질의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저탄고지(키토제닉)’ 방식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지방은 인슐린 수치를 급격히 올리지 않으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한의학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움직임이 적어 기운이 정체되고 습담(노폐물)이 쌓이기 쉬운 이들에게 끈적한 습(濕)을 만드는 과도한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은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훌륭한 양생법이 된다.
수행자와 명상가: 열을 내리고 정신을 맑게 하는 채식
육체 활동보다는 정신 수양에 집중하며, 생식(번식) 욕구를 승화시켜야 하는 스님이나 명상가들에게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합리적이다.
영양학적으로 완전 채식은 단백질이나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수행자에게는 도움이 된다. 육류, 특히 붉은 고기는 체내에서 열을 발생시키고 남성 호르몬 수치에 관여하여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게 만든다. 반면 채소 위주의 식단은 몸을 차갑게 식혀주고(淸熱), 소화기의 부담을 줄여 정신을 맑게 한다. 의학적으로도 소식과 채식은 세포의 성장 신호(mTOR 경로)를 억제하여 노화를 늦추고 염증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다수 존재한다. 영양학적 ‘결핍’이 수행자에게는 오히려 정신적 ‘충만’을 돕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당신의 식단은 당신의 삶을 닮아야 한다
이처럼 세상에 나쁜 식단은 없다. 다만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는 식단이 있을 뿐이다. 몸을 격렬하게 쓰는 자에게는 밥과 고기가 약이고, 의자에 묶인 자에게는 지방이 효율적인 연료이며, 도를 닦는 자에게는 풀이 벗이고, 생명을 잉태하려는 자에게는 기름진 음식이 축복이 된다.
남들이 좋다는 식단을 쫓기 전에,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오늘 하루 내 몸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당신의 식판 위에 올려져야 할 것은 유행하는 슈퍼푸드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지탱해 줄 가장 현실적인 에너지여야 한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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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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