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컨비니언스 스토어를 운영하는 한인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시트콤이다. 컨비니언스 스토어는 미국의 세븐-일레븐과 비슷한 생활 잡화점으로, 캐나다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주류 TV방송사(캐나다 CBS)가 해외 한인가정과 비즈니스를 소재로 만든 유일한 시트콤이고, 아시안 이민자들을 친근한 이웃으로 묘사하여 흥행에 성공한 최초의 작품이다. 2016년 처음 방송이 시작된 후 갈수록 인기가 높아져 2018년부터 넷풀릭스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도 소개되면서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한국계뿐 아니라 모든 이민자 가정이 겪는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감과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시트콤은 2021년 시즌 5를 끝으로 갑작스레 종영됐는데, 그때 작가 및 배우들과 제작진 사이의 여러 갈등이 폭로되어 씁쓸함을 자아냈다. 주인공은 한인이민자들이지만 제작진은 대부분 백인남성이었으니, 인종과 성차별, 문화적 민감성 같은 것들이 반영되지 않는 등 주류연예계에서 아시안 배우들이 흔히 겪는 문제가 표출된 것이었다.
한편 TV 시트콤과는 달리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그 소동과 무관하게 공연이 계속돼왔고, 현재 LA의 아만슨 극장에서 연극계의 호평 속에 공연 중이다.
사실은 연극이 먼저였고, 시트콤은 연극의 대성공에 따라 나중에 제작된 것이다.
오리지널 “김씨네 편의점”은 극작가 겸 배우 최인섭(인스 최)이 쓴 희곡작품이다. 한 살 때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최씨는 자라면서 주변 친지들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것을 보아왔고, 그 자신도 알바를 뛰었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연기 프로그램을 졸업한 후 아시안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김씨네 편의점”을 썼고, 극본을 주류 극단들에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2011년 그는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인 토론토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자신이 감독, 주연을 맡고 올 아시안 캐스트를 기용한 무대를 올렸는데 그 공연이 대박을 터뜨렸다. 상을 휩쓴 것은 물론, 연장공연이 연일 매진사태를 이루었고 더 큰 극장에서의 공연이 잇따랐다.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런던 웨스트엔드, 워싱턴 D.C.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결국 TV 시트콤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1세대 이민자 부모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자녀를 위해 이민 와 밤낮 없이 비즈니스를 지키는 전형적인 한인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인스 최)는 가부장적이고 완고하며 다혈질이라 가족들과 자주 갈등을 일으킨다. 급기야 아들을 때려 십대시절 가출하게 만들었지만, 자나 깨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창밖만 바라보는, 사실은 속정이 깊고 표현에 서툰 한국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다. 가게를 팔라는 오퍼가 들어오고 편안하게 은퇴해도 좋을 테지만, 자신이 평생 일궈온 가게를 파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거절한다.
딸 재닛(켈리 서)은 서른 살의 노처녀. 부모와 함께 살며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하지만 꿈은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에게 사진촬영은 취미일 뿐, 가게 즉 자신의 유산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한다. 와중에 재닛이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흑인소년이 경찰관(브랜든 맥나이트)이 되어 나타나자 둘 사이에 특별한 전류가 흐르고….
엄마(에스더 정)는 가족을 엄청 사랑하고 교회활동에 열심이며, 남편과 자식들 사이에서 속앓이하며 양쪽을 중재하는 인물이다. 시트콤에서는 비중이 큰데 연극에서는 역할이 확 줄어든 것이 아쉽다.
극 후반부에야 등장하는 아들 정(라이언 진)은 결혼해 아기까지 낳았지만 과거 문제아로서 학교중퇴에 소년원 전력까지 있어 정상적인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세 부모와 2세 자녀 사이의 문화차이와 세대갈등, 타인종 고객들과의 관계, 자녀결혼문제, 부모의 은퇴와 비즈니스의 미래 등이 코믹하게 뒤섞여 펼쳐진다.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시트콤보다 훨씬 재미있다. 각 에피소드가 22분에 불과한 시트콤은 좀 느슨하고 가볍고 싱거운 편인데, 한시간 반 동안 꽉 짜여 돌아가는 연극은 코미디의 밀도와 강도가 훨씬 파워풀해서 시종 배꼽잡고 웃게 만든다.
오프닝 날 2,000석이 넘는 아만슨 극장을 꽉 채운 관객은 대부분 타인종이었는데, 우리 보기엔 별거 아닌 장면에서도 수없이 포복절도,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한 예로 아빠가 과장된 콩글리시로 좀도둑을 구별하는 한국인만의 방식을 설명할 때는 흑인들로서는 불쾌할 수 있는 표현들이 등장하고 재닛은 인종차별적이라며 반발하지만, 인스 최의 연기가 너무도 실감나게 솔직하고 직설적이라 누구도 화를 낼 수 없게 만든다.
웨이니 멩게샤의 연출과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훌륭하고, 특별히 좋았던 것은 편의점을 무대에 차려놓은 세트 디자인이었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밝고 깨끗하고 복잡하고 다채로운 공간은 그 자체로 생동감 넘치는 중요한 배역이다.
4월19일까지 공연되는 “김씨네 편의점”을 한인들도 많이 관람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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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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