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부터 25일까지 뉴욕을 비롯한 미 동북부에 내린 폭설은 한 달 가까이 녹지 않았다. 도시는 순백의 설경 대신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주차 공간은 사라졌고, 차들은 손상됐으며, 사람들의 일상은 불편 속에 갇혔다.
잠시 날이 풀려 눈이 녹는가 싶더니, 정확히 한 달 만에 또다시 대규모 폭설이 쏟아졌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체감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흰눈은아름다웠지만, 녹지 않는 눈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의 사회도 이와 닮았다.
폭등하는 물가, 구하기 힘든 노동력,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위대한 미국”을 내세운 관세 전쟁, 그리고 끊임없이 거론되는 미국의 이란 공격 가능성. 여기에 권력층의 타락을 상징하는 Jeffrey Epstein 파일 논란까지 겹쳐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는 무겁고 복잡하며, 경제 활동과 시민의 삶 위에 차곡차곡 얼음처럼 쌓인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크게 다뤄졌다. 그러나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래서 물가가 내려간다는 건지, 단지 정치적 견제일 뿐인지 명확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책은 여전히 논쟁 속에 있고, 시민은 그 결과가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분간하기 어렵다.
엡스틴 사건도 마찬가지다. 앤드루 왕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정을 겪었지만, 미국의 최고위층 인사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처벌이 이루어졌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법은 모두에게 같은가, 아니면 어떤 이들에게는 예외인가. 시민의 눈에는 그 경계가 흐릿하다.
문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명확히 가려내기 어려운 환경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이 진실을 억압했다. 소수의 용기 있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진실을 폭로했고, 다수는 그 진실을 통해 각성하며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진실을 감추는 방식이 억압이 아니라 과잉이다. 종교, 사회조직, 전통 언론, 그리고 소셜미디어까지 동원된 여론 조작을 위한 선전 선동은 사실을 감추기보다 서로 다른 ‘해석’을 폭증시킨다. 그 결과 진실은 하나의 공통 기반이 아니라 진영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지가 된다.
이 환경에서 사건에 대한 진실은 더 이상 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공격의 무기가 된다.
인공지능까지 결합한 정보 생태계는 사실을 더 빠르게 확산시키는 동시에, 왜곡도 더 빠르게 증폭시킨다. 그래서 통합의 기반이 되어야 할 진실이 오히려 분열의 도구로 전환된다.
눈이 오면 이웃이 함께 치워야 길이 열린다. 치우지 않은 눈은 얼어붙어 바위처럼 굳고, 결국 일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쌓여가는 문제들도 그렇다.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사건, 책임이 모호한 권력, 진영 논리에 갇힌 언론 보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한 ‘사회적 빙벽’이 된다.
이 빙하기를 녹일 열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답은 거창하지 않다. 현상만 소비하지 않고, 그 현상을 왜곡하는 매개와 이해관계를 꿰뚫어 보려는 시민의 지적 훈련이다. 철학과 인문학, 비판적 사고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을 자신의 진영에 유리하게 선택하는 태도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사실을 검증하려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역량으로 유지된다. 깨어 있는 시민과 유권자가 있을 때만 올바른 지도자가 선출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경제적 침체를 넘어 인식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결국 사회적 빙하기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겨울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사회의 겨울은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 녹이려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진실을 향한 공동의 기준이 있을 때만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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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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