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 동안, 미국은 라오스에 2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퍼부었다. 58만 회의 폭격이 이뤄졌고, 2백만 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계산해 보면 8분마다 한 번씩, 9년을 쉬지 않고 폭격기가 떴다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 쏟아부은 폭탄 총량을 넘어서는 양이었다.
명분은 북베트남군의 보급로 ‘호치민 트레일' 차단이었다. 라오스가 그 통로를 허용한 건 의지가 아니라 무력이었다. 당시 라오스는 친서방 왕정 국가였으나 파테트 라오(Pathet Lao)와의 내전에 휘말려 있었고, 호치민 트레일이 지나는 지역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험준한 정글이었다. 라오스는 피해자였다. 그런데 미국은 피해자의 국토를 폭격했다.
더 나쁜 것은 방법이었다. 2억 7천만 발의 자탄을 담은 집속탄(Cluster Bombs)이 뿌려졌고, 그중 30%에 달하는 약 8천만 발이 터지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혔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5만 명 이상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피해자의 40%는 어린이들이었다.
집속탄의 자탄은 주먹만 한 공처럼 생겼다. 아이들이 공으로 알고 집어 드는 순간 폭발한다. 그 불발탄을 모두 제거하는 데 앞으로도 1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것은 ‘비밀 전쟁(Secret War)'이었다. CIA가 주도했고, 미국 의회도, 국민도 몰랐다. 민주주의 국가가 자국 국민과 의회를 속이면서 타국 어린이들의 땅에 수십 년짜리 살인 도구를 심은 것이다.
43년의 공직 생애를 담은 “역사의 파편들(Pot Shards)”이라는 회고록에서 도널드 그렉(Donald P. Gregg) 전 대사는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공부하라." 주재국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미국의 논리만 강요할 때,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상대를 무조건 악마로 규정할 때, 외교는 실패하고 전쟁이 시작된다고 했다.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30%가 오가는 좁은 바다 호르무즈 해협이 전쟁으로 봉쇄되면서 국제 석유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미 3백억 달러에 달하는 전비를 썼다.
경제학자 닐 퍼그슨은 국가부채 총액이 국방비를 넘어서는 순간 그 나라의 몰락이 시작한다고 19세기 에덤 퍼그슨이 제시한 퍼그슨 법칙을 들어 미국에 경고했다. 미국은 그 경계를 이미 2024년에 넘었다.
인도차이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아이티. 미국이 개입한 곳들의 공통된 결말은 하나였다. 개입 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 아니면 국가 기능을 상실한 실패 국가다. 그 패턴은 반복됐고, 교훈은 학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국제사회의 신뢰보다 힘을 앞세운다.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마다 미국의 빚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고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그리고 또 이란 전쟁을 시작했다.
결국 미국을 바로잡는 책임은 유권자의 몫이다.
첫째, 내가 찍는 후보가 어떤 외교 철학을 가졌는지,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국가 부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확인해야 한다.
둘째, 물가가 오르고, 의료비가 치솟고, 일자리가 불안한 것은 단순히 이민자 때문이거나 특정 정당 때문이 아니다. 라오스에서 시작된 실패한 외교 정책의 구조적 비용이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 결정을 내렸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진짜 정치 참여다.
셋째, 그렉 대사가 지적한 대로, 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일 때마다 강경파들이 등장해 이를 불신하고 저지해 왔다. 악마화는 사고를 멈추게 한다. 복잡한 현실을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는 정치인일수록, 그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
넷째, 라오스의 ‘비밀 전쟁'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민이 몰랐기 때문이다. 의회도 속았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방어선은 시민이 알고, 묻고, 따지는 것이다. 투표는 4년에 한 번이지만, 감시는 매일 해야 한다.
라오스의 아이들은 아직도 공처럼 생긴 쇳덩어리를 집어 들다가 죽는다. 그 쇳덩어리가 누구의 결정으로 거기 뿌려졌는지, 그 결정을 한 사람들은 누구를 대표했는지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고, 유권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역사는 도자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하지만 그 파편들을 모아 맞춰 보면 전체 그림이 보인다. 그런 전체를 보는 사람만이 다음 폭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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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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