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산가족의 바람
▶ 92년 혈육만난 의사 왕규현씨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쟁통에 혼자 가족과 헤어져 실향민이 되고 미국으로 건너와 유명 의사가 된 미네소타주 에덴프레리 거주 왕규현(64)씨. 북한 개성이 고향인 왕씨는 16세이던 1951년 홀홀 단신으로 가족곁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나면서 왕씨의 형들이 모두 인민군에 들어가자 왕씨의 부친은 ‘아들 넷을 조국에 바쳤지만 막내아들만은 뺏길 수 없다’며 왕씨를 무작정 인천으로 내려보냈다는 것.
한 달만 피해있으면 될 거라는 부친의 말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는 왕씨는 "만약 그때 영원한 이별이 될 줄 알았더라면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혼자 집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후 40년 넘게 자신을 고아로 여기고 살아온 왕씨가 캐나다의 한 목사의 중재로 북한 가족들의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80년대말. 모친과 부친은 헤어진지 2년과 9년만에 세상을 떠났으나 세 형과 누이동생은 북한에서 잘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92년 평양을 방문, 꿈에도 그리던 형제자매를 만나고 개성에 들러 부모님 묘소를 찾아볼 수 있었던 왕씨는 "그나마 가족상봉이 가능했던 나는 운이 좋은 경우"라며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수만의 이산가족들이 이념을 떠나 재결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같은 왕씨의 스토리는 12일 AP를 타고 사진과 함께 전세계로 퍼져 온 세계에 퍼져 살고있는 한인 이산가족들의 단장의 아픔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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