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혁, 정효실 도피 3년10개월
▶ 업주 "말없는 그늘진 얼굴... 까맣게 몰랐다"
한미경찰 수사공조로 17일 검거된 살인용의자 최수혁(31)·정효실(29)씨의 3년10개월에 걸친 도피행각은 결국 사우스 센트럴LA와 인접한 롱비치 샌타페 애비뉴의 한 빈민아파트에서 막을 내렸다.
이들이 검거직전까지 살았던 곳은 입주자의 절대 다수가 히스패닉인 빈민아파트. 두 사람은 한인들이 살지않는 외진 곳에 스튜디오식 싱글아파트를 잡고 주 고객이 흑인과 히스패닉인 마켓에서 ‘김성필’ ‘김현미’라는 가명으로 일하며 어렵게 생활을 유지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와 정씨는 97년 1월1일 범행을 저지른뒤 정씨의 오빠 호출기에 ‘사람을 죽여 암매장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밀항한 다음 미국으로 불법입국했다.
두 사람은 미국에 들어온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채 애리조나 등지를 전전했으며 2년전께 LA에 와서 롱비치와 사우스센트럴LA에 있는 리커스토어, 마켓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주변사람들은 "평소 생활이 어려운 것으로 보였으며 늘 그늘진 얼굴에 말이 없는 편이었다"며 살인용의자로 쫓겨살았던 이들의 비참했던 삶을 전했다.
이 마켓의 한인업주는 두 사람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뒤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살인용의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업소 관계자는 "1년반전에 50대초반의 남자가 데려와 소개해 줘 정씨를 고용했으나 밥을 잘 안먹고 몸이 자주 아파 일주일에 3∼4일만 일을 했다"면서 "월급은 400달러정도였고 평소 MTA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 지도읍이 고향인 최씨는 97년 당시 광주대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으며 사건 열흘 뒤인 97년 1월11일 피해자인 오주애씨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광주 남구 주원동이 주소지로 돼있는 정씨는 당시 모 회사 경리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INS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이들은 이달안으로 인정신문을 받은뒤 청문회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강제송환될 전망이다. 경찰은 두 사람이 ‘동명이인’임을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사진과 지문확인작업이 끝난 만큼 본국송환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하천식·이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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