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영씨 정계은퇴 인터뷰
▶ 폭동계기 정계진출 "8년간 열심히 뛰었다"
선거일이 임박했다. 대통령을 꿈꾸든 연방상원을 바라보든 표밭을 누비고 다니는 선거 출마자들의 걸음걸이가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일을 기다리는 정호영 가든그로브 시의원의 마음은 느긋하기만 하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일 게다.
정의원의 불출마는 자의적인 결정이다. 이로써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다. 정의원은 24일 시의원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8년간에 걸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지난 92년 LA에서 발생한 폭동은 많은 한인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픈 상처를 남겼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폭동은 정의원의 주류사회 진출 결심에 불을 당겼고 그해 정의원(당시 59세)은 임기 4년의 가든그로브 시의원 선거에 몸을 던지는 모험을 감행했다.
"한인 1세로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다만 폭동으로 피해를 입은 한인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싶었습니다. 출마 자체가 한인들의 존재와 위상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의원은 출마의 배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결과는 정의원의 당선. 2명을 뽑는데 12명의 후보가 출마, 혼전을 벌인 끝에 당선, 결과는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도 8,432표로 후보들 가운데 최고 득표를 했으며 아시안으로서 최초라는 이정표와 함께.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백인 유권자들이 이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정의원은 96년 시의원 선거에서도 1만3,000표를 획득, 최고 득표 기록을 갱신하면서 재선에 성공,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의원은 지난 8년간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시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소수계 민족들을 대변해 이들과 백인들간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정부가 한인 사업체들의 개업허가 절차를 완화하는 데도 한 몫을 했다. 또한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소수계 민족들의 전통문화, 상품을 주류사회에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할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의원은 98년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낙선했다. 정의원은 정치적으로 성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때 더 이상 공직에 미련을 갖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이번 선거에 불출마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켰다.
정의원은 가든그로브시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미국 정계에 나서 줄 한인 꿈나무를 끝내 찾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업에 종사하고 있는 정의원은 현재의 일에 충실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은 해외 거주 한민족의 연결망을 형성하는 일이라며 말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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