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대 수명이 크게 늘어나 갑년(甲年)의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세상의 습속은 힘센 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예순한번째 생일에는 푸짐하든 조촐하든 잔칫상을 받는 것이 예사다. 문단이나 학계에서는 그런 잔치가 흔히 화갑 기념 문집의 형태를 띤다. 화갑 기념 문집은 대체로 후학이나 벗들이 당사자의 삶과 학술적ㆍ예술적 성취를 평가하는 글들로 채워진다. 그런 문집 자체가 잔치인 만큼, 거기 실린 글들이 덕담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과지성사는 그런 화갑 기념 문집을 ‘우리 문학 깊이 읽기’라는 시리즈로 내고 있다. 이 시리즈는 대개 당사자의 자전 에세이를 앞에 두고, 후학과의 대담, 작품 세계에 대한 평론 그리고 당사자의 사람됨에 대한 사적 글들로 이뤄진다. 지난 97년의 ‘홍성원 깊이 읽기’로 시동을 건 이 시리즈는 그간 회갑을 맞은 황동규 김병익 마종기 김주영 이청준 정현종 김광규 김치수 씨들을 대상으로 잇달아 나왔고, 소설가 박상륭 씨를 대상으로 한 책이 내달에 나올 예정이다. 모두 다 문학과지성사와 깊은 인연을 지닌 문인들이다.
지난해 말에 나온 ‘김치수 깊이 읽기’는 자신의 글과 삶을 일치시키며 35년간 한국 소설에 개입해온 한 비평가의 안팎을 읽는다. 김치수씨는 책 앞의 자전 에세이에서 엄혹한 80년대를 되돌아보며 "굶어죽는 어린아이 앞에서 문학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굶어죽는 어린아이가 있는 사회가 얼마나 추문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라는 말로 그 당시 자신의 무력감과 싸웠다고 말함으로써, 고통스러운 ‘문학주의자’의 입지를 피력하고 있다. 장 리카르두의 그 말은 60년대 프랑스에서 사르트르를 비롯한 참여 문학자들이 누보로망(신소설)을 비판하는 데 맞서서 그것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김치수씨는 한국에 처음으로 누보로망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김치수씨는 누보로망이나 문학사회학이나 구조주의와 얽힌 불문학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학평론가로서 기억될 것이다. 그의 한 평론집 제목이 ‘공감의 비평을 위하여’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비평은 텍스트의 약점을 들추어내기보다는 강점을 상찬하며 거기 깊이 공감하는 화융(和融)의 비평을 지향해 왔다. 예컨대 대중소설가로서의 최인호가 아닌, 빼어난 본격 단편 작가로서의 최인호를 표나게 치켜세운 것도 김치수씨다.
책의 제3부에 모인 친지들의 회고를 보면, 김치수씨 글의 따뜻함은 결국 그의 사람됨의 따뜻함인 듯하다. 모난데 없는 조정자라는 것이 한 문인에게 꼭 상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김치수씨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그래왔듯 삶에서도 이웃들을 감싸고 격려하고 화해시키는 평화의 생산자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격으로 나이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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