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랜스 노길자씨, 북한 오빠 상봉자명단 확인
"죽은 줄로만 알았던 큰오빠가 살아 계시다니..."
한국전쟁중 소식이 끊겨 20여년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신고까지 냈던 큰오빠 노수명(71)씨가 북에 살고 있으며 3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노길자(60·토랜스)씨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충남 공주 우성면 귀산리가 고향인 노씨는 일찍 부모를 여윈 뒤 서울에 올라와 회현동 작은집에서 작은 오빠 노수동(사망)씨와 함께 살았고 큰오빠 수명씨는 자취를 하며 대창택시회사라는 곳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다.
노씨는 "큰오빠는 가끔 저녁시간에 나를 데리고 나가 영화도 보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곤 했다"며 "다정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오랜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반세기가 넘는 남매의 생이별이 시작된 것은 노씨가 9세 때로 한국전쟁이 최고조를 이루고 있을 무렵.
노씨는 작은집을 따라 고향으로 피난 갔고 이 때부터 큰오빠와 연락이 두절돼 20여년을 기다리다 결국 지난 74년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사망신고를 했다. 그 이후 노씨는 이민생활에 몰두하느라 큰오빠란 존재가 기억에서 사라진 것은 물론 북한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더더욱 상상하지도 못했다. 특히 자신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온 둘째 오빠가 7년 전 사망한 뒤에는 모든 것을 잊고 생업에만 몰두했다. 때문에 두 차례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도 이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지난 1일 본보를 통해 큰오빠의 생존소식을 확인한 노씨는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단절된 지난 50여년의 기억과 시간을 다시 이어야 하는 노씨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남몰래 간직해 온 아픔이 먼저 떠올랐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뒤 가장으로서 제대로 형제와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는 책망이자 원망이었고 이산가족이 겪어야 하는 ‘한’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유일한 혈육이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차츰 안정도 찾고 만남의 기쁨이 떠오르기도 했다.
노씨의 남편 서정길씨는 "가뜩이나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가 큰오빠의 생존소식을 듣고 무척 놀라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아내에게 ‘수백만 이산가족 가운데 선택된 것이니 최종 명단에 포함되면 함께 서울로 가 오빠를 만나자’고 위로했다"고 전했다.
지난 83년부터 토랜스에서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는 노씨는 "둘째 오빠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며 "상봉이 이뤄지면 아들 부부 및 오는 5월 결혼할 딸의 사진을 준비해 보여주고 오빠 부부를 위해 금반지를 선물로 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씨는 또 "만약 상봉이 이뤄지지 않아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희망을 갖고 재회의 날을 기다릴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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