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서울 한국일보 지면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하나 실렸다.
세계 수학계(數學界)가 ‘풀이 불가능’으로 결론 낸 ‘임의 각 3등분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5단 통 단에 복잡한 수학 공식과 도표로 가득 찬 광고는 도발적으로 결론을 맺었다. “국내 수학자들은 내가 제시한 풀이에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주기 바라며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이론이 맞는다고 공식 인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눈금없는 자와 콤파스만을 사용, ‘임의의 각을 3등분’하는 문제는 ‘임의의 원과 면적이 같은 정4각형 그리기’, ‘임의의 정육면체 부피의 두 배 부피를 갖는 정육면체의 한 변 길이를 작도하기’와 함께 수학계에서 3대 난제로 여겨져 왔다.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이 제기해놓은 이들 난제 가운데 특히 임의 각 3등분은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19세기 수학자 봔첼 에 의해 풀 수 없는 문제로 결말났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나왔음에도 많은 이들이 각의 3등분 문제 해결에 도전해왔다. 그들은 ‘각의 3등분 가’로 불린다. 미국, 유럽, 한국에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3등분 가’들이 있다. 한국일보에 광고를 낸 이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이다.
당시 신참 기자였던 필자는 광고를 낸 무명 수학자를 취재하기 위해 만나자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자신이 제시한 풀이의 정오(正誤)에만 관심 있을 뿐 매스컴에 등장하기는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자는 대신 국내 저명한 수학자에게 이 이론을 검토해줄 것을 부탁했다. 수학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이에 응했으며 풀이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판정했다. 집념의 무명 수학자도 추후 이 같은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 난제 해결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조선중앙TV는 김형직 사범대학의 송덕호 교수가 ‘임의 각 3등분’을 마침내 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송 교수가 기존 작도기구의 제한성을 극복한 새로운 콤파스, 즉 원호등분콤파스를 고안, 이 난제를 풀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내외 수학계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2진법을 창안한 미국의 수학자 클로드 셰넌이 2월말 84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2진법이란 모든 정보를 0과 1의 조합으로 표현, 컴퓨터 시대를 열게 한 수학 이론이다. 이미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된 컴퓨터 시대의 초석은 셰넌이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필부(匹夫)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수학 문제에 매달리는 학자들을 보면 이들이야말로 인류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70년대 광고로만 만난 한국의 이름 모를 ‘각의 3등분 가’는 어떤 진전을 이루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그 집념이 존경 스럽다. 그분이 수학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르나 그를 포함한 숱한 수학자,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현대인들은 보다 안락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중국의 각급 학교들은 한 기하(幾何)문제 풀기에 바쁘다. 장쩌민 주석이 마카오 중학교를 방문, ‘임의의 오각별(五角星)도형을 그렸을 때 이 도형의 5개 외접원(外接圓)의 5개 교차점들이 동일한 원형 선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문제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수학은 계산문제를 단순히 푸는 것이 아니라 탐구정신을 배양케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장 주석의 기하문제를 제출하고 학생들의 탐구정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70대 중반인 장 주석이 이 같은 수학문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멋있어 보인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지만 우리도 이런 남다른 면모를 지닌 지도자를 가질 수 없을까 부러워진다. 중국이 점차 사회주의 부국化 해 가는 단초를 발견한 것도 같다.
자녀들이 ‘탐구정신을 배양하는’ 수학 문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자. 우리의 후손들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인물로 성장케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큰 보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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