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오는 토요일에 만약 비가 오면 The Bridge of Dance 스튜디오에서 있게 될 김명수씨의 살풀이 워크샵에 갈 수 있고,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때를 놓치지 않도록 채소밭과 꽃밭에 씨 뿌릴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날 두가지를 다 할 수 있도록 오전중에는 비가 오지 않아 하루는 걸림직한 일을 꼭 가보고 싶은 욕심에 부지런히 해치우고 서둘러 맨하탄에 나갔다.
“살풀이”라는 춤 이름이 우선 나에게는 관심을 일으킨다. 김명수씨가 그날 프로그램에 설명한 ‘살풀이’라는 말을 인용하자면 ‘살’이란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에 끼어있다고 믿어지는 독하고 모질고, 해치는 나쁜 기운을 말하는 것이고, ‘풀이’는 맺힌 것 또는 얽매인 것을 풀어낸다는 뜻이라고 했다.
제자 네 사람의 발표가 있었다. 한 사람씩 같은 음악에 맞추어 같은 순서의 동작으로 살풀이 춤을 추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른 표현을 해낼 수 있는지 춤에 문외한인 나인데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하얗고 긴 천을 도구로 허공에 두손으로 떠받쳐 모시는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앞에 놓고 달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기도 하고, 다시 마음 돌려 집어드는 듯한 동작, 그리고 엎드려서 추는 자지러질듯 한 통곡의 표현, 훨훨 나르는 듯 미친듯이 돌아가면서 추어대는 그 표현, 치마자락을 슬며시 잡고 오열을 감추지 못해 아니면 허탈상태가 되어 시간과 공간이 지금 여기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 같은 정지상태의 표현, 이 모든 움직임들이 전문가들이 흠없이 매끈하게 추는 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나를 매료시킨 시간들이었다.
그분들은 중년을 넘은 주부들이고 직업도 다 다르고, 시간여유도 많지 않은 전형적인 한국인 뉴요커들이란다. 춤을 통해 보여준 그분들의 ‘자기’가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각자 살아온 삶을 통해 갖게 된 슬픔과 고뇌와 기쁨과 희망을 꾸밈없이 몸으로 표현해준 그 마음들이 때묻지 않고 고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러워 보일까하는 의아심이 생김과 동시에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춤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재인식을 하게 되었다.
오래 전 ‘The Fiddler on the Roof’에서 유대인들이 결혼식날 신나게 자기네들 전통춤을 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야외에서 가진 환갑잔치에 손님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징소리 장고소리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덩실덩실 춘 모습들이 사진에 담겨있는 걸 보고 마음 흐뭇하게 느꼈던 일이 다시 기억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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