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 뉴욕살이가 고달프고 향수도 달랠 겸 ‘세라믹’ 교실에 수강신청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산이 보고 싶어 무작정 베어마운틴이 보이는 곳까지 달려가기도 했던 때였는데 금발의 도자기 강사는 뜻밖에 동양의 도자기 종주국에서 온 초라한 청년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조선 막사발에 심취한 자신의 동경의 나라에서 온 젊은이에 대한 친근감 때문인지 열정적 강의가 지금도 새롭다.
물레를 다루는 솜씨 또한 대단하여 얼렁뚱땅 진흙 속에서 커피잔이나 꿀항아리를 건져올리는 풍신이 신들린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었는데 가르치려는 열정과 배우려는 욕구가 어울려 진흙 투성이를 마다하지 않았었다.
흙 다루는 솜씨부터 태극을 형성하는 중심 잡기 , 손바닥 힘의 분배, 양손과 손가락 사이 흙의 얽힘을 설명하면서 찐득찐득한 진흙을 사이에 두고 이성의 손가락 접촉이 빈번하게 되는데 진흙 속의 손가락들이 물기와 어울려 미끄러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면서 간지럼 같은 묘한 감정을 유발하게 되는데 속물같은 나의 감정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기도 했었다.
신라 토기에서부터 고려청자, 조선 막사발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한국인이 선호했던 도자기의 선들을 설명할 때 쯤이면 그녀의 한국사랑이 끝간 데가 없어 공연히 숙연해지기 까지 하였다.
한국의 선은 은근과 끈기가 있는 천천한 속도의 선이며 사랑에 굶주린 마음의 상징처럼 길게 끊어질듯 이어지는 애처로운 선이라 했다. 때로는 가늘거나 부드럽기도 하지만 노여웁거나 비틀거리는 표정의 선들은 한국의 구비구비 이어가는 산의 선에서부터 왔으며 그릇과 대비되는 기와지붕과 아낙네의 버선코의 선이 어우러지며 완성되었다고 정의한다. 그것은 동양에서 회화 공간의 골력이고 추상공간을 주제하는 근원이라고 역설한다.
자,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 근교에 도자기 공예, 세라믹 아트의 붐이 일고 있다. 한인 공통 시각예술에 원조가 정해져 있을까만은 그래도 우리는 그 부분의 우수한 민족의 후예, 아들 딸들이다.
가만히 숨을 멈추고, 시선을 맞추고 자신에 잠겨 보면 그 옛 선인들의 숨결과 눈매무새와 솜씨가 우리에게서 되살아 나리라.
물레를 타고 돌아오는 우리 겨레의 혼과 힘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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