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은 세계 역사상 잊혀지지 않을 참혹한 날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 부와 군사력의 상징인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이 여지없이 파괴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6,5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제2차 대전 최대의 전투였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연합군 측의 사망자가 2,500여명이었다는 것, 남북 전쟁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3일간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과 북군을 합한 사망자의 수가 6,570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난 9월11일 테러사건의 규모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전투와는 관계가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미국인들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다. 독립전쟁 이래로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는 미국인들은 그 생생한 파괴 장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러한 끔찍한 일이 미국의 심장부에 실제로 자행되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상하 양원 합동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하여 테러리스트 및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하는 국가들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였다. 그는 이 전쟁을 새로운 21세기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게 미국의 편에 서던가 아니면 미국의 적이 되던가 양자 택일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미국인들의 분노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한치의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도 남겨 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테러리스트 및 그 옹호 국가들의 박멸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 판단 밑에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고 편리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참혹한 테러사건의 배후에는 그것에 비견할 만한 참혹하고 오래된 중동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배경과 원인에 대한 해결책 없이 아직 그 대상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적을 향하여 무엇이 목표의 달성인지도 정의되지 않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0년 간의 전쟁을 치른, 아니 아직도 치르고 있는 중인 아프가니스탄에는 이미 폐허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그 국민들에게는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 설 곳이 없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기 파괴적인 광신과 수천년에 걸쳐 닦아온 산악전의 기술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설혹 상상을 초월하고 의표를 찌르는 작전의 성공으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일당을 체포하거나 제거한다 하자. 그것이 과연 중동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테러의 끝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순교의 죽음을 열망하는 그들에게 미국은 끝없는 순교자의 행렬, 롤 모델의 전시회를 마련해 주게 될 가능성이 더 많을 것 같다.
분쟁의 계속이었던 20세기와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경제 제도를 통하여 온 인류가 함께 번영을 누리자는 희망 밑에서 21세기가 시작된 지 이제 불과 아홉 달이다. 20세기가 전쟁의 세기로 기록되리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동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 역시 참혹한 전쟁의 세기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전쟁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죽어가야 할 것이며, 특히 조국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용감하게 목숨을 바치곤 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어야 할 것인가 생각할 때 가슴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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